지난 10월부터 2달 동안 <화쟁>에서는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과거와 현재 우리의 자리를 되돌아보자는 취지에서 생명평화운동의 역사를 몇 회에 걸쳐 공부해 왔습니다. 그동안 생명평화운동의 각 분야별로 전문가분들을 초청하여 이때까지의 역사를 정리 및 공부해보는 시간을 가졌었고 앞으로도 몇 회 정도에 걸쳐 지속될 예정입니다.
이번주에는 생명평화운동의 역사공부를 쉬어 갈겸 막간으로 다른 주제를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이규원님이 서구의 생명정치와 관련된 담론들을 소개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생명정치 담론은 기존의 생태주의나 생태학과도 무관하고 한국에서 진행되어온 생명운동과는 맥락과 방향이 다르고 좀 이질적이지만 새로운 문제의식들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관련내용을 참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지난 번 <화쟁> 모임에서는 윤형근님께서 유영모, 함석헌에서 <녹색평론>에 이르는 생명평화운동의 전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강의해주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주에도 계속해서 생명평화운동의 역사를 공부할 계획인데요. 이정호 불교생명연합운영위원장님께서 불교에서 진행되어온 생명평화운동의 역사에 대해 정리해주실 계획입니다.
생명평화의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고 의제를 발굴하고자 하는 공부모임 <화쟁> 두번째 모임이 10월 1일 7시부터 9시반까지 장충동 한살림 교육장에서 있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번 화쟁에 이어 <그 많은 사회적 대안은 왜 대안이 되지 못했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생명운동이 어떤 사회체제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 발제: 이번에는 특정한 텍스트를 정해서 이야기 하지는 않았는데 정규호님께서 김진석,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책을 읽고 거기에서 생각해볼만한 내용을 정리해주셨습니다.
정규호 - 김진석은 우충좌돌을 이야기한다. 좌충우돌이 우왕좌왕이라면 우충좌돌은 우파를 때리고 좌를 때리면서 새로운 대안을 탐색해보자는 이야기이다. 그는 사회체제적 대안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주로 새로운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우파와 좌파에 대한 기우뚱한 균형을 찾아보자고 한다.
우파는 힘을 중요시하고 좌파는 부끄러움을 강조한다. 우파가 외국에 기생한다면 좌파는 세계화를 단순히 한 면만 보고 비판한다. 우파는 시장의 논리와 경쟁을 강조한다면 좌파는 시장을 부정하면서 평등을 강조한다. 하지만 우파는 실제로 기득권이며 좌파는 시장을 부정하지만 실제 현실을 꼼꼼히 보지 못한다. 우파는 시장에서 사적인 욕망을 이야기하며 좌파는 공공성을 이야기한다. 김진석은 우파와 좌파에 대한 기우뚱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균형은 기계적. 산술적 균형이 아니다. 오히려 기계적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하면 피곤하다고 말한다. 기우뚱한 균형은 복잡한 세계를 살아가는 감각이다.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우파는 시장논리에 의한 경쟁.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좌파는 평등성과 교육의 공공성을 중시한다. 좌파는 공교육을 이야기하는데 하지만 사교육시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교육의 문제는 대학의 서열화이므로 서울대 해체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대를 해체하면 그 학생들은 다시 연고대로 가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일류 사립대를 해체하라고 하기도 어렵다. 차라리 국립대를 더 짓고. 선발을 다양화하는 것이 낫다. 입학은 쉬운데 졸업은 어려운 시스템이 더 좋지 않겠냐? 경쟁과 평등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는 또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관계는 복잡하다고 말한다. 좌파는 민주화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하고 우파는 자본주의가 다 해결한다고 한다. 그러나 양쪽의 관계는 복잡하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을 규범적 잣대로 평가하지 말고 현실을 인정하자고 한다. 소통의 부재라는 말은 여러 사회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이것은 이성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욕망과 결핍의 과잉 때문이다. 윤리와 현실의 간극이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강북 뉴타운과 같은 문제는 욕망을 제대로 살펴야 대안이 나오지 않겠나. 정치적 재단은 옳지 않다. 소통을 위해서는 우파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좌파는 근본주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보수는 폭력을 쉽게 받아들이고 좌파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경쟁과 질투를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라고 말하는데 좌파는 그것을 넘 쉽게 본다. 민주주의가 경쟁과 질투를 오히려 유발한 점이 있지 않나? 우리나라에서는 40대, 중간층의 역할이 중요하다. 성장과 분배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하는 세대다. 그 중도층이 많아질수록 균형잡기의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여기까지가 김진석이 이야기하는 내용의 개략적인 요약이다.
2. 논쟁: 정규호님의 발제 이후에 자유롭게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아래에서 논의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주요섭 - 생명평화 진영에서 사회경제적 체제 대안을 이야기할 때가 됐다. 한살림에서도 89년에 협의경제 등과 같은 이야기를 윤곽을 짐작할 수는 있을 정도는 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토론이 없었던 것 같다. 생명운동 진영에도 체제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공명의 역할이 아닐까? 또한 요즘 금융경제로 인해 국가의 귀환을 이야기하는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생명평화 진영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근행 - 시장과 국가와 사회가 있다고 할 때, 생명운동은 사회의 한 작은 단위이며, 사회는 시장과 국가에 대한 규제력을 발휘하는 지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도 동등한 영향력을 주고받지 못했다. 현재 상황은 이전까지는 국가가 주도하다가, 지금은 시장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점이며, 사회는 실험의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사회가 하나의 정치적 체계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그때 떠오르는 것이 국가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현재 생명운동의 역량과 위상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야겠지만 사회 속에서 영향을 실제화시킬 수 있는 실체들을 구축하는데 매진하는 단계인 것 같다. 실체가 있을 때 국가와 시장과 논쟁을 할 수 있다. 사회가 그런 것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생협이 그런 이야기를 못하는 것은 그런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논의를 적극적으로 펼칠 때가 되었다. 공동체는 스스로 외부에 내세우기에는 내부로 더욱 기울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공동체 내부에서 그런 흐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어떤 체계적인 것이 없어서 호소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오은영 - 개인적으로는 진보신당의 당원인데, 진보신당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실망했는데도 왜 진보신당을 선택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가 대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는가라는 고민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생명운동도 역시 그렇다. 물론 아예 패러다임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진보신당은 국가권력의 문제를 중요시한다면 생명운동은 일상운동에서 접근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갈망이 생긴다. 그러면 생명운동으로 세상이 바뀔 것인가 아니면 자기 주변을 바꾸는 정도로 끝날 것인가? 생명운동은 진보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진보라는 가치가 아니라 어떤 다른 가치가 있을까? 그것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근행 - 물론 쟁점이 설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예전의 운동이 체제를 체제로 바꾸려 하는 것이었다면 생명운동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정치학의 이행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면도 있는 것 같다. 체제적인 차원에서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가? 지금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닐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것들이 어떤 지점에서는 전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것을 크리티컬 메스라는 개념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에서는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바뀐다. 기존의 틀로 설명 못하는 부분이 여전히 있다.
오은영 - 예를 들면 예전에 초록정치연대에서 정치를 하고자 했다면 정치적 비전이 있는 것이 아니었는가?
주요섭 - 체제에 대한 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라면 그러한 상이 있으니 이행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러한 상이 뚜렷하냐 희미하냐라는 문제는 있다. 뚜렷하다는 것은 거짓인 것 같다. 상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한다. 협의경제라는 말을 지금의 언어로 설명한다면 조절시장 이론과 어소시에이션 이론의 중간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그 얘기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론들이 항상 분명한가 하면 오히려 더 애매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운동의 문제는 그러한 고민조차 안한다는 것이다. 생협은 극단적으로 가면 생협 관료주의가 되거나 자본주의 복무하는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제기가 안밖에서 있어야한다. 이근행 - 어떤 것이 있어야 상상력을 제공하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운동의 다양한 거점들이 매우 중요하다. 전체를 그리는데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다.
주요섭 - 그런 것들이 없다면 체제적 전망이라는 것을 아예 보여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역통화를 통한 체제적 전환이라는 영감이 있다면 그걸 해볼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한밭레츠는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제 생각으로는 귀농이 있다면 귀농의 호혜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아니면 원주의 운동단체들은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물적토대를 만들어 왔다고 본다. 체제를 상상하려면 그런 실체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거기에서 비약할 때가 되었다. 거기에 뇌관역할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생명운동은 진보신당과 만나야할 것 같다. 사회적 만남. 그래야 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체제적 전망에서는 키워드를 잘 찾아내는 것, 운동과 어떻게 잘 접목시킬 수 있을까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정혜선 - 풀뿌리학교에서 몇 년 동안 활동해왔다. 언젠가 학교설명회를 할 때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때 다르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늘 안오는데 다른 것을 강조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을까? 기존 사람을 다르게 만들어내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뽑으려는 건지, 다르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테두리를 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공감대와 접점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수경스님이 오체투지하는 걸 보고 아버지는 새만금이 끝났는데 왜 아직 저런 걸 하느냐라고 생각하시더라.
이진천 - 체제 대안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 공부가 된다. 뇌관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진보신당을 만나자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체제에 대한 대안의 이야기는 예전 사회과학의 잔재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A라는 체제를 B라는 체제가 대체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 아닐까? 우선 우리가 말한 운동의 실체들이 얼마나 귀한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동력을 딴 곳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굳이 나누자면 생명운동의 반대는 반생명이지 자본주의는 아니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귀농은 몸과 마음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생협은 마음을 내놓아야 하지만 몸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그 정도 노력조차 안하는 진보는 말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명운동은 말도 안 되는 것 같다.
오은영 - 그런 이야기는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것은 패러다임이 다르니 묻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물론 맑스주의적 체제 대안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같이 고민해야하는 문제들이 있지 않겠는가?
이근행 - 그런 문제는 있지만 기존의 개별적인 생명운동이 진보신당처럼 모든 것을 하는 곳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말씀하신 문제들에 대해서는 귀농을 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오은영 - 하지만 그런 운동에는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있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귀농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근행 -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누가 좀 더 빨리 접하느냐 이런 문제가 아닐까?
주요섭 - 노동운동도 처음에는 혁신적이었다. 생협도 소비자운동으로 결합했을 때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보편화되었을 때 세분화되고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소비자 협동조합의 경우에도 그럴 우려가 많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성장기이기 때문에 내용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소비자 협동단체는 이익단체로서의 한계가 있을 것 같다. 학생운동은 혁명적 강령을 갖고 있지만 혁명적이지 않았다. 한살림도 혁명적 강령이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중전략이 필요하다. 한살림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일단 필요하다. 그리고 예를 들면 일본에는 마트형생협과 생산자협동조합이 공존하고 있다. 한살림 내에서 이런 다양함이 동시적으로 진행이 되면서 전체로서의 사회적 전망이 세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적 대안이란, 비정규직, FTA, 농업붕괴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한 정책대안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서도 아마도 ‘체제적 대안’을 의미할 것이다.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대안적 발전모델의 여러 가지 대안들도 그런 의미에서 검토하려 했을 것.
그렇다면 <화쟁: ‘사회적 대안2’>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두 번째 모임을 기획하면서 참석자들은 ‘생명평화의 대안’을 물었다. 대안적 ‘발전’모델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적’ 대안 체제가 그 길일지도 모른다. 생명평화운동의 사회상, 혹은 체제적 전망을 토론하자는 얘기로 들린다.
‘체제의 전환’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사회경제적 체제의 전환이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 자식하고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자고 해도 황제는 결국 이건희다. 신자유주의가 종말을 맞았다고 하지만, 나폴리의 금융자본가들과 영국의 산업자본가들은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며 자기 자신 외에 마누라와 자식을 바꾸고서라도 ‘자본/국가(권력)’을 의연하게 지킬 것이다.
<한밭LETS에서 사용하는 지역통화, 두루>
나는 최근 다시 녹색평론의 착실한 독자가 되었다. 이번호는 잘 안 읽었지만, 기존의 글들을 통해서 사회경제적 대안, 체제적 대안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철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정확히 10년전 1998년에 소개된 베르나르 리에테르의 글 ‘탐욕과 희소성을 넘어서’. 제목은 무척 철학적으로 보이지만, 세계화와 금융자본주의를 엄밀하고도 통찰력 있게 논파한다. 10년후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측이라도 한듯이. 그리고 체제적 대안이라 할만한 답을 내놓는다. 지역통화, 즉 통화체제의 재구성을 통한 사회경제적 체제의 전환.
이런 저런 이야기. 그에 따르면,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다시 말해 우리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지속가능성’과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이다. 그리고 그로인한 ‘폭력과 전쟁’이다.” (한 마디로 성장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충분히 먹고 살만하다.)
실비오 게젤의 ‘노화되는 돈(aging money)’이야말로 정말 생명경제 패러다임이라고 생각된다. 자세한 것은 그의 글을 읽어보시길...
더불어서 공부방에 올린 ‘지역통화 LETS에 대하여’,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과의 대화, ‘NAM과 지역통화운동’도 필독을 권한다. 둘다 녹색평론에 소개된 글이다. 실비오게젤의 aging money에 대해서는 검색을 하거나, 일본사람들이 쓴 지역통화입문을 참고하시면 좋을듯.
생명평화의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고 의제를 발굴하고자 하는 공부모임 <화쟁> 첫모임이 9월 11일 8시부터 10시까지 장충동 한살림 교육장에서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이시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 발제: 처음에는 발제를 맡으신 주요섭님이 김형기 편저의 <대안적 발전모델>이라는 책에서 두 개의 논문(김형기의 “대안적 발전모델의 비전: 새로운 경제질서를 향하여”, 그리고 홍태희의 “여성들이 만드는 참살이 경제의 가능성: ‘보살핌의 경제론’”)에서 제시된 두 가지 대안적 모델을 정리해주시고, 덧붙여 지난 사회포럼에서 강남훈 교수가 발표한 “신자유주의 대안의 정치”라는 논문에 제시된 논의도 부가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해주셨습니다. 발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김형기는 ‘대안적 발전모델’, 홍태희는 ‘보살핌의 경제’, 강남훈은 사회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연대사회’를 대안적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다음의 표를 참조해주세요).
대안적 발전모델
경제 - 민주적-지식기반 시장경제 / 사회패러다임 - 참여-연대-생태
보살핌의 경제
경제의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조화로운 삶(넓게는 생태계)
연대사회
베네수엘라를 모델삼아 참여사회주의(사회적 소유, 국가의 사멸 등)
2. 논쟁: 주요섭님의 발제 이후에 자유롭게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아래에서 논의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완전한 녹취가 아닌 메모 수준이라 논의가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겠지만 어떤 논의들이 있는지는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 주요섭: 이 논의들을 보면서 공부가 많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김형기님이 제시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생태지역주의를 가져가야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김형기님은 성장연합에 대항하여 참여-연대-생태의 헤게모니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성장연합에 대해 무지개 연대(생태주의와 사회주의)를 형성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대안이 아닐까?
- 정규호: 발제한 내용에서 제시된 대안적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델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범적인 방향은 있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한 전략이 없다.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맨땅에 헤딩한 것과 같다. 모델도 없다.
그리고 강남훈님처럼 베네수엘라에서 배우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궁금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성공 이면에는 석유의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그러한 실험을 할 수 있는 물적 자산이 있는데 그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민중의 힘만 이야기 한다는 것은 공허한 것 같다. 또 김형기가 참여․연대․생태를 사회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것이 약간 뜬금없다. 이 주장이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어떤 차이점을 가질까? 여기서 말하는 생태는 사실은 생태효율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 주요섭: 김형기님은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요소들을 결합시킨 것 같다.
- 이규원: 지식기반 경제는 기본적으로 혁신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호봉에 따라 균일하게 임금을 배분하는 연공서열제가 아닌 능력에 따라 임금을 받는 연봉제를 도입했다. 이러한 제도는 포드주의 시대와는 달리 노동자들에게 균일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반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안적 모델로 지식기반 경제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참여나 연대를 사회적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현실을 너무 고려하지 않는 넌센스 아닌가?
- 정규호: 지식기반 경제에서 말하는 지식은 오직 경제를 뒷받침하는 종류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과 같은 다른 종류의 지식은 배제되어 있다. 생명평화의 관점으로 경제를 본다고 할 때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지금 시점에 다시 되새겨볼 수는 없을까? 지식은 인간다움의 실현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 이규원: 지식기반 경제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경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담론이 갖고 있는 효과가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이러한 담론들은 이제 우리는 예전의 산업노동자와 같이 동일한 노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끊임없이 습득하고 자기를 혁신하는 지식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평생 기술 변화를 끊임없이 쫓아가야 하는 프로그래머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지식노동자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담론은 기업이 노동자를 교육해야 하는 고비용을 자기계발이라는 스스로의 책임 하에 노동자 각자에게 그 비용을 떠넘기는 아웃소싱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진천: 지식정보화 담론을 주장하는 시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요즘에는 지혜라는 단어는 안 쓴다. 예를 들면 귀농에 대한 지식은 많이 있지만 그에 대한 지혜는 그곳에 가서 살아봐야 알 수 있다. 지혜에 대한 더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 정규호: 보살핌의 경제에서 좀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첫 번째는 경제행위의 이유가 욕구와 욕망의 충족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공재를 대가없이 이용한다는 점이다. 욕구와 욕망은 무제한적인데 그것을 제한 없이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그리고 공공재는 대가 없이 사용한 것인가?
- 주요섭: 생명력의 발현이 욕망의 충족이라는 점에서 경제행위의 이유가 욕구의 충족이라고 표현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공공재는 공기와 물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 이규원: 현재 우리가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윤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향해온 자율성, 창조성, 자기조직화와 같은 말들은 어떤 면에서 현재 자본주의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를 통해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일정한 윤리를 내세운다. 요즘 기업들은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노동자들을 원한다. 결국 기업은 개인이 구태의연한 노동형태를 벗어나 자율적이고 창조적으로 노동해야 한다는 윤리를 주장하면서 그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순히 자율성과 창조성을 내세우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김정지현: 팀블로그에 올린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글에서도 운동이 자기 언어를 빼앗겼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 주요섭: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되찾기 위한 정치 투쟁, 담론 투쟁이 필요하다. 지식정보자본주의의 왜곡된 발현을 폭로하고 원래의 의미들을 사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저항이며 정치이다. 그 이후 대안으로 예를 들면 고진은 소비자의 연대 혹은 어소시에시션의 어소시에이션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우리로 따지면 생협 모델이나 협동 경제가 될 것이다.
- 이진천: 언어를 되찾아오자. 그것이 공명이 해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 정규호: 그렇다면 담론투쟁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나? 작지만 보여줄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작은 현장을 발굴하고 엮는 것도 공명의 역할일 것이다.
취지와 목적은 이렇습니다. 첫째, 여러가지 사회적 현안을 생명평화적 시각에서의 분석 검토하고 둘째, 생명평화운동의 사회화를 위한 의제의 발굴하며 셋째, <생명평화 ‘공명’(준)> 회원들의 참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장차 자발적인 연구모임으로 발전하면 더욱 좋겠지요. 마지막으로 공부모임의 결과는 고스란히 온라인사이트 ‘공명’의 컨텐츠가 됩니다.
운영방식은 -‘공명’ 회원은 가능한 많이 참석하면 좋겠구요. -물론 비회원에게도 개방됩니다. -발표자는 가능하면 ‘공명’ 내부에서 찾으려 합니다. -모임은 격주 1회 수요일 저녁에 진행합니다. -실천적 과제, 정책대안이 제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면 쟁점을 분명하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