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혜경제: 간략한 개념과 역사
요즘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그동안 지배적인 경제담론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신자유주의가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호혜경제, 선물경제, 녹색경제, 사회적 경제와 같은 새로운 경제담론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차이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번에는 호혜경제라는 개념을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경제라는 개념의 역사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단어 중에서 '경제'라는 말만큼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란 무엇일까요? 우선 상식적으로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경제란 돈벌이와 관련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곧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더라도 전세계적인 상황 속에서 돈의 가치가 폭락해버리면 아무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돈, 화폐라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현대 경제학에서는 경제를 어떻게 정의할까요? 이에 대한 논의는 복잡하지만 간략하게 핵심적인 개념을 두가지 꼽아보자면 현대 경제학은 경제를 '희소성' 속에서의 최대한 '효율적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원은 제한되어 있는데 비용을 소모해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경제적'라는 뜻이지요. 보통 신문에서 어떤 것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효율성'에 맡겨야 된다는 이야기를 할때도 바로 이런 경제의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호혜경제 역시 일종의 '경제'이므로 '희소성 속에서의 효율적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개념일까요? 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라는 개념 자체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 econom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 oikonomia'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원래 '오이코노미아 oikonomia'라는 단어는 현대적인 의미의 '경제'와 같이 돈벌이, 혹은 희소성 속에서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가장이 자신의 가정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 하인들을 어떻게 운용하고, 가정의 재화를 어떻게 관리하며 재산을 늘일 것인가 등등. 그러므로 ‘오이코노미아 oikonomia’의 명사형인 '오이코노모스 oikonomos'는 가정을 돌보고 관리하는 직분이나 법칙을 말하며 현대어로는 '청지기'나, '경륜', '행정', '분배'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economy'가 '경제'가 아닌 '오이코노미아', 즉 가정의 통치라는 원래의 의미에 가장 가깝게 번역된 현대의 사례로는 기독교의 분파 중 하나인 '지방교회'의 지도자, 위트니스 리의 저서의 제목을 상기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책, 『The Economy of God』는 한국에서는 ‘하나님의 경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이코노모스'는 어떻게 현대적인 의미의 '경제'로 번역되기 시작했을까요? 우선 이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16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융성하게 된 '통치'에 관한 정치적 저작들의 논의를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군주론』은 이러한 논의에서 일종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케이벨리 이전에 군주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신과 군주와의 연속성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군주의 통치는 자연과 신의 질서를 모델로 삼고 있으며 자연과 신의 섭리와 합치하는 한 올바른 것이었습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논파했는데, 그는 군주와 공국의 관계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그 관계는 일시적으로 결합된 것일 뿐이라는 점을 입증해보였습니다(『군주론』이 하필이면 정통적자가 아닌 왕권을 이양받은 메디치가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중요해지는 것은 자연과 신의 섭리가 아닌 세속화된 세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국가'를 '통치'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이때부터 국가의 통치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국가의 통치의 모델로서 '오이코노모스'가 '가정'의 관리에서 '국가'의 관리로 범위로 확대되어 등장하게 됩니다. 국가의 통치는 바로 '정치'에 '오이코노미아'를 도입하는 것이며, 가장이 가정에서 가족과 재화를 다루는 방식이 국가가 주민 population과 재산 wealth을 통치하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이로 인해 가정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실천으로서 '정치경제학 political economy'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물질적 '부'의 문제가 국가의 통치에서 핵심적인 사안으로 중요하게 떠오르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경제'라는 개념의 유래를 길게 추적하면서 비교적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경제'라는 개념이 단순히 '희소성 속에서의 효율적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살림살이나 국가와 같은 사회적 관계의 관리와 연관되어 있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2. 역사 속 다른 경제 개념들을 찾아서
방금 살펴본 것처럼 경제가 단순한 효율성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면 호혜경제 역시 이러한 측면들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호혜경제라는 개념들을 발전시켜온 사람들의 논의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증여경제, 선물경제 - 마르셀 모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고대 원시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증여경제' 혹은 '선물경제'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제시한 사람 중의 한명입니다. 모스에 의하면 고대 원시 사회에서는 선물을 서로 주고 받는 증여제도가 발달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선물제도가 “자유롭고 공평무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제적이며 상당히 타산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선물은 받으면 기쁘지만 '되돌려주는 답례의 의무감'으로 인해 불쾌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이중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 원시사회에서는 선물교환이 호혜성의 원리에 의해 선물을 줄 의무(증여), 받을 의무(수혜), 갚을 의무(답례)의 연쇄적 관계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선물교환 제도의 특징은 첫째로는 '교환'이라는 것이 시장 없이도 특정한 규칙과 계약을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며(선물을 받고도 답례를 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둘째로는 선물의 교환이 경제적 필요에 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유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라는 점입니다. 즉, 선물 교환이라는 경제 제도는 경제성과 도덕성이 함께 작동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르셀 모스는 선물교환과 같은 경제 제도는 법적인 제도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심지어 종교적인 제도, 한마디로 총제적인 제도라고 주장합니다.
2) 호혜, 재분배, 교환 - 칼 폴라니
칼 폴라니 역시 20세기 초반의 경제학자로서 시장의 신화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론을 제시했던 학자 중 한 명입니다. 시장의 신화란 사회에서 인간 행위자 사이에 가장 근본적이고 일차적인 상호작용은 시장의 교환이며, 국가나 시민사회는 이를 보완해주는 보조장치라고 보는 관점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이러한 시장의 신화를 거부하며, 고대 사회에 대한 경제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역사적으로 경제에는 호혜(쿨라 교역), 재분배(포틀래치), 교환(시장)이라는 3가지 제도가 모두 존재해왔고 시장에서의 교환이라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 부수적인 것이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현재와 같이 경제 원리에 의해 사회 전체가 재조직된 상황을 '경제에 파묻힌 embeded 사회'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자유방임' 경제가 사실은 시장의 자율성이 아니라 '국가'의 계획과 폭력에 의해 사회 전체를 시장제도로 조직하는 과정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시장 자본주의는 아슬아슬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국가기구를 통해 사회 전체를 시장의 자기조정에 순응시키려고 하는 경향과 또 하나는 사회 조직의 핵심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자기보호 강화하는 경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3)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 - 가라타니 고진
가라타니 고진은 방금 이야기한 폴라니의 논의를 좀더 발전 시켜 자본주의가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보로메오의 매듭(세 개의 고리가 얽혀 있어서 하나를 끊으면 다 끊어지는 매듭)이라고 주장합니다. 자본이 상품교환과 화폐를 통한 교환형식이고 스테이트가 약탈-재분배라는 교환형식이며 네이션이 자본제가 파괴한 호혜적 관계에 기반한 교환형식이라고 할때 각각의 고유한 교환양식이 서로를 보완해주고 있는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이 세가지를 모두 극복하지 않고 하나만 극복하려고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를 들면 레닌주의는 강력한 스테이트로 자본주의를 타도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파시즘은 네이션으로 자본주의 극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고진은 이 삼위일체(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교환원리로 어소시에이션을 주장합니다.
그는 1990년대 말에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이라는 어소시에이션에 기반하는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합니다. 이 운동은 지역통화의 개념을 활용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소시에이션이라는 새로운 교환양식을 작동시켜보고자 합니다. 즉, NAM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본의 교환 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호혜하고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운동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가 연대하여 자본주의 밖의 생활의 지평을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고진은 이후에 <세계공화국>이라는 책에서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변화시키려는 실천전략이 NAM과 같은 내부의 노력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지양하는 힘(“국가를 ‘위로부터’ 꼼짝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위로부터의 운동을 연계시키는 ‘글로벌 커뮤니티(어소시에이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모스나 폴라니나 고진이 이야기하는 (호혜)경제는 약간씩의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호혜)경제를 효율성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로서 바라본다는 점, 둘째는 역사 속에서 '시장' 혹은 시장원리가 자연발생적이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것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해왔던 양식들을 살펴볼 때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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