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평화활동가 대회>가 충북 괴산 이화여자대학교 고사리수련관에서 열렸습니다. 오전 9시에 광화문에 모여서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12시쯤 고사리수련관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예전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넘었다던 문경새재를 지나면서 멋들어지게 잘 익은 단풍이 펼쳐진 풍경을 산 위에서 구경하기도 했습니다(알고보니 버스 기사님이 잠깐 길을 잘못들어서 그 위까지 올라간 것이더군요. 덕분에 좋은 경치는 잘 구경했습니다만). 고사리수련관은 충주터미널에서도 대략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따로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는데 수련관 건물을 예약한 팀이 평화활동가 대회밖에 없어서 전체를 아주 여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았었지요.
"2008 평화운동의 좌절과 희망"
아무튼 다들 도착한 뒤에 짐을 풀어놓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뒤 강당에 모여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뒤에 몇명씩 모아서 팀를 짜서 본격적인 프로그램으로 들어갔습니다. 첫째날 오후 프로그램은 '평화운동의 좌절과 희망'이었는데, 재미있었던 것이 각 팀 별로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에 발표시간에는 그냥 말로만 발표해서는 안되고 꼭 '포퍼먼스'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난 번 평화활동가 대회가 대개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어서 참여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평가가 많아서 이번에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참여형'으로 바꾸게 된 것이었더랍니다. 어쨌든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나 뉴타운, 금융위기와 같은 거시적인 것들이 평화운동의 절망으로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우 개인적인 것들, 경제적인 여건의 어려움, 운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등 진솔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그뒤 대망의 퍼포먼스 발표시간. 여기에 전부 적지는 못하겠지만 정말로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발표들을 준비했더군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는 비폭력 평화물결 박성용 목사님이 무릅팍 도사로 나와서 카페의 탁자 위에 앉아 평화활동가들의 고민들을 들어주고 해법을 제시해주는 퍼포먼스였습니다. 그 중에 한분이 오시더니 '요새는 목사가 점을 본다던데 여깁니까?'라고 이야기해서 다들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다들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재미있는 퍼포먼스로 잘 표현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PEACE CONCERT - 알아서하Show
하지만 첫째날의 행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녁시간의 프로그램 제목은 <알아서하Show>였습니다. 노는 것도 일방적으로 공연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형으로 놀라는 깊은 뜻이담겨있는 제목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내년 2009년 평화운동 유행 예감 <패션쇼>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행사를 하고 남은 플랜카드들을 가지고 가능한 세련된 그리고 평화의 메세지를 담은 옷을 만들라는 주문을 받았고(이때부터 사람들이 창의력 고갈에 슬슬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다들 플랜카드들을 얼기설기 자르고 붙여서 옷을 만들어 모델에게 입혔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조는 아무리 해도 이게 옷이 잘 안나와서 처음에는 고생했습니다만 나중에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아주 놀라운 옷을(모델에게는 차마 미안한)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패션쇼 시간도 모델을이 평소에는 어디에 숨겨뒀는지 혼신의 힘과 끼를 발휘해서 매우 즐겁게 웃으면서 쇼를 감상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한홍구 선생님이 나중에 의상을 설명하러 올라오셔서 앙드레 김을 흉내내셨는데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저녁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다들 로비에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도 그때 처음 보는 친구들과 인사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12시쯤 되었는데도 아무도 안들어가시더라구요.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놀기 시작했는데 저는 피곤해서 1시쯤에는 들어가서 잤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심지어 5시까지 놀다가 들어간 분들도 계시더군요. 평화활동가 대회 첫째날은 이렇게 마쳤습니다.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
둘째날에는 오전부터 다시 워크샵이 시작되었는데 "유쾌발랄한 평화행동 발명하기(평화운동의 방법론)",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평화운동가로서의 지속가능성)", "평화운동의 경계 허물기(평화운동의 지평확대)" 세 가지 주제 중에서 한가지 주제를 선택하여 참여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평화운동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 첫번째, 세번째 주제에 참여하기는 좀 부담스러워서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에 참여했습니다(원래 이 주제가 운동가로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된 주제인데 '살아남기'라는 제목이 왠지 필사적인 느낌을 준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평화운동가로서 살아남는데 있어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아무래도 평화활동가 대회에 참여하신 분들이 20대, 30대 초반의 활동가들이 많아서 이런 문제들이 좀 더 체감적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각자 상황이 다르고 처한 어려움도 다르지만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공통적인 문제였고, 업무과다, 인력부족, 시간부족, 운동가로서 자기계발이나 능력향상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도 많이 나온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논의해야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는데 거기서 나온 몇가지 아이디어들은 활동가들끼리 공동체나 생협을 구축하자. 불필요한 업무들을 줄이자("일은 하루에 4시간이면 충분하다"), 선배 활동가와 후배 활동가의 멘토시스템 같은 걸 만들자 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들은 이런 시기들을 거쳐간 선배들이 함께 참여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긴 합니다만(처음 준비팀의 의도는 그랬다고 합니다) 서로의 고민들을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발표시간에 나머지 주제를 논의한 팀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1번 주제나 3번 주제를 논의한 팀도 모두 2번 주제를 다루는 팀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을 똑같이 이야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평화운동의 경계를 허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존의 평화운동의 방법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역시 경제적인 문제, 인력과 자원의 문제, 소통의 문제 이런 것들으로 논의가 귀결되었던 것이지요. 둘째날은 첫째날보다는 덜 빡빡하게 진행되었고 저녁에는 스윙댄스를 배우거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다들 9시 정도부터 일찍 로비에 모여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어제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과정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중간에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서 역시나 한국이 좁다는=_=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과는 연락처를 주고 받고 또 연락하기로 했는데 재미있는 일을 같이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점심에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수련원을 출발해서 마지막날 일정에는 다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6시에 일어나서 출발했는데도 서울에 도착하니 12시가 다되었더군요. 아무튼 평화활동가 대회는 여러모로 즐거웠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좋았던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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