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시대에 공동의 대안을 찾아서"
- 호혜경제 네트워크를 준비하며


요즘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경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대공황의 전조로 보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이럴 때 한국이 도약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할 기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어떤 예측이 맞는지 불확실하고 매우 혼란스럽지만, 현재 기존의 체제가 뾰족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1. 글로벌 경제위기 시대에 생명평화운동의 대안모색

생명평화 '공명'에서는 이러한 글로벌 경제위기의 시대에 국가도, 시장도, 분명한 해법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民의 대안을 찾아보고자 '호혜경제 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호혜경제, 녹색경제, 사회적 경제를 이야기하는 분들은 많습니다만 '호혜경제 네트워크'는 단순히 어떤 이론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기보다는 이때까지 생명평화운동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고 운동을 해왔던 그룹들이 함께 모여 실제로 운용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지역을 중심으로 귀농은 생계형 귀농에 대비한 프로그램을, 녹색가게는 순환형 생활경제 프로그램을, 공동체형 생협은 民주도의 사회적 안전망을, 대규모생협은 사회연대기금의 출연을, 농촌의 생산자공동체는 로컬푸드를, 여기저기서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기업/일자리를 통해 각각의 실천들을 네트워크로 교직하여 작게나마 대안을 형성해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 대안경제를 위한 모임 진행경과

그리하여 지난 11월 12일에 호혜, 협동, 생명 등을 중심가치로 대안적 경제를 실천하고 모색하는 단체의 활동가들이 모여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개별 단체의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녹색사회연구소, 녹색가게, 생태유아공동체, 생협전국연합회, 귀농운동본부, 한살림(모심과살림연구소), 생명평화 공명과 같은 단체들이 참여했습니다. 첫모임에서는 공황적 경제위기에 대한 실천현장 중심의 대안 마련과 공동 대응에 공감하면서, 다양한 경제적 대안의 탐색과 실천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장을 공동으로 마련키로 했습니다.

11월 25일 두번째 모임에서는 일단 각자 활동가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 경제의 그림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1월 중에는 대안경제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한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개최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과 실천을 토대로 공황적 경제위기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대안경제를 논의하는 주체들의 외연을 좀더 확대하여 다양한 그룹들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진행해가기로 했습니다.

12월 9일 세번째 모임에서는 대안경제에 대한 토론회를 1월 말경에 있는 다보스 포럼을 염두에 두고 개최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특히 다보스 포럼이 현재 자본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라면 대안경제에 대한 토론화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대에 民에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을 그려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호혜경제네트워크는 이러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벌써 세번 정도 모임을 가졌습니다만 아직 준비과정 중의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년 1월에 개최하려고 하는 토론회와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생명평화 작목반

지난 주말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평화활동가 대회>가 충북 괴산 이화여자대학교 고사리수련관에서 열렸습니다. 오전 9시에 광화문에 모여서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12시쯤 고사리수련관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예전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넘었다던 문경새재를 지나면서 멋들어지게 잘 익은 단풍이 펼쳐진 풍경을 산 위에서 구경하기도 했습니다(알고보니 버스 기사님이 잠깐 길을 잘못들어서 그 위까지 올라간 것이더군요. 덕분에 좋은 경치는 잘 구경했습니다만). 고사리수련관은 충주터미널에서도 대략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따로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는데 수련관 건물을 예약한 팀이 평화활동가 대회밖에 없어서 전체를 아주 여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았었지요.


"2008 평화운동의 좌절과 희망"

아무튼 다들 도착한 뒤에 짐을 풀어놓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뒤 강당에 모여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뒤에 몇명씩 모아서 팀를 짜서 본격적인 프로그램으로 들어갔습니다. 첫째날 오후 프로그램은 '평화운동의 좌절과 희망'이었는데, 재미있었던 것이 각 팀 별로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에 발표시간에는 그냥 말로만 발표해서는 안되고 꼭 '포퍼먼스'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난 번 평화활동가 대회가 대개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어서 참여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평가가 많아서 이번에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참여형'으로 바꾸게 된 것이었더랍니다. 어쨌든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나 뉴타운, 금융위기와 같은 거시적인 것들이 평화운동의 절망으로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우 개인적인 것들, 경제적인 여건의 어려움, 운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등 진솔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그뒤 대망의 퍼포먼스 발표시간. 여기에 전부 적지는 못하겠지만 정말로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발표들을 준비했더군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는 비폭력 평화물결 박성용 목사님이 무릅팍 도사로 나와서 카페의 탁자 위에 앉아 평화활동가들의 고민들을 들어주고 해법을 제시해주는 퍼포먼스였습니다. 그 중에 한분이 오시더니 '요새는 목사가 점을 본다던데 여깁니까?'라고 이야기해서 다들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다들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재미있는 퍼포먼스로 잘 표현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PEACE CONCERT - 알아서하Show

하지만 첫째날의 행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녁시간의 프로그램 제목은 <알아서하Show>였습니다. 노는 것도 일방적으로 공연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형으로 놀라는 깊은 뜻이담겨있는 제목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내년 2009년 평화운동 유행 예감 <패션쇼>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행사를 하고 남은 플랜카드들을 가지고 가능한 세련된 그리고 평화의 메세지를 담은 옷을 만들라는 주문을 받았고(이때부터 사람들이 창의력 고갈에 슬슬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다들 플랜카드들을 얼기설기 자르고 붙여서 옷을 만들어 모델에게 입혔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조는 아무리 해도 이게 옷이 잘 안나와서 처음에는 고생했습니다만 나중에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아주 놀라운 옷을(모델에게는 차마 미안한)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패션쇼 시간도 모델을이 평소에는 어디에 숨겨뒀는지 혼신의 힘과 끼를 발휘해서 매우 즐겁게 웃으면서 쇼를 감상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한홍구 선생님이 나중에 의상을 설명하러 올라오셔서 앙드레 김을 흉내내셨는데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저녁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다들 로비에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도 그때 처음 보는 친구들과 인사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12시쯤 되었는데도 아무도 안들어가시더라구요.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놀기 시작했는데 저는 피곤해서 1시쯤에는 들어가서 잤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심지어 5시까지 놀다가 들어간 분들도 계시더군요. 평화활동가 대회 첫째날은 이렇게 마쳤습니다.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

둘째날에는 오전부터 다시 워크샵이 시작되었는데 "유쾌발랄한 평화행동 발명하기(평화운동의 방법론)",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평화운동가로서의 지속가능성)", "평화운동의 경계 허물기(평화운동의 지평확대)" 세 가지 주제 중에서 한가지 주제를 선택하여 참여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평화운동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 첫번째, 세번째 주제에 참여하기는 좀 부담스러워서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에 참여했습니다(원래 이 주제가 운동가로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된 주제인데 '살아남기'라는 제목이 왠지 필사적인 느낌을 준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평화운동가로서 살아남는데 있어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아무래도 평화활동가 대회에 참여하신 분들이 20대, 30대 초반의 활동가들이 많아서 이런 문제들이 좀 더 체감적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각자 상황이 다르고 처한 어려움도 다르지만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공통적인 문제였고, 업무과다, 인력부족, 시간부족, 운동가로서 자기계발이나 능력향상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도 많이 나온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논의해야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는데 거기서 나온 몇가지 아이디어들은 활동가들끼리 공동체나 생협을 구축하자. 불필요한 업무들을 줄이자("일은 하루에 4시간이면 충분하다"), 선배 활동가와 후배 활동가의 멘토시스템 같은 걸 만들자 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들은 이런 시기들을 거쳐간 선배들이 함께 참여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긴 합니다만(처음 준비팀의 의도는 그랬다고 합니다) 서로의 고민들을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발표시간에 나머지 주제를 논의한 팀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1번 주제나 3번 주제를 논의한 팀도 모두 2번 주제를 다루는 팀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을 똑같이 이야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평화운동의 경계를 허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존의 평화운동의 방법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역시 경제적인 문제, 인력과 자원의 문제, 소통의 문제 이런 것들으로 논의가 귀결되었던 것이지요. 둘째날은 첫째날보다는 덜 빡빡하게 진행되었고 저녁에는 스윙댄스를 배우거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다들 9시 정도부터 일찍 로비에 모여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어제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과정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중간에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서 역시나 한국이 좁다는=_=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과는 연락처를 주고 받고 또 연락하기로 했는데 재미있는 일을 같이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점심에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수련원을 출발해서 마지막날 일정에는 다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6시에 일어나서 출발했는데도 서울에 도착하니 12시가 다되었더군요. 아무튼 평화활동가 대회는 여러모로 즐거웠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좋았던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생명평화 작목반
 
"고삐풀린 시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 필요"

22일, "글로벌 금융위기와 생명평화운동" 강연회 열렸다



10월 22일(수) 저녁 7시 장충동 한살림 5층 교육장에서 모심과 살림 연구소와 생명평화 '공명'(준)의 공동주최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생명평화운동"이라는 주제로 김영호 학장(유한대, 전 산업자원부 장관) 초청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강연회는 요즘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생명평화운동이 이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영호 학장은 거시적으로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시대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첫번째로는 미국의 기축통화 시대에서 포스트-달러 시대로의 전환, 둘째로는 미국지배, 백인지배 시대의 종언과 비서양권의 대두, 셋째로는 인간 중심에서 탈인간 중심의, 생명 전체의 르네상스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진보진영에서 자주 논의하는 것처럼 이제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는 정말로 종말을 고한 것인가에 대해 김 학장은 미시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국제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단독투자은행은 사라지는 없이 아니라 기존의 상업은행으로 합병되고 있고, 지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파생 금융상품을 없애자고는 하지 않고, 그에 대한 투명한 감시시스템을 만들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현실의 움직임은 단순히 신자유주의가 몰락으로 간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김 학장은 신자유주의를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분리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합니다. 즉, "시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가 사라진 고삐풀린 자본주의가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지금 상황은 거시적으로는 시장을 통제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것이 분위기지만 미시적인 흐름은 더욱 복잡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세계 시민사회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를테면 세계의 시민들이 은행과 같은 거대한 기관을 신뢰하여 금융상품들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금융기관만 지원하지 거기에서 손해를 본 시민들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 학장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세계의 시민사회가 이에 대해 고발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즉, 시장에 대해 민주주의의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 김 학장은 생명평화운동과 관련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운동을 위축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교토 의정서 체제와 같이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문제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관심이 멀어지면서 거의 정지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파괴는 조금만 더 진행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온다고 이야기합니다. 김 학장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명평화운동은 생물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전체 강연은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질의 응답 시간에는 많은 분들이 열심히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몇 가지 질문만 정리해보자면 민주주의와 시장주의의 조화라는 것에 대해 좀더 설명해달라는 질문에는 민주주의의 통제가 심하면 자본의 해외도피 현상이 일어나고 통제가 없으면 시장의 횡포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적절한 조화, 중용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해주셨고, 대안경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다는 질문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소비,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책임 자본주의'의 구성을 대안으로 제시하시면서 물론 이것이 주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답변해주셨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난뒤에는 이 모임을 기점으로 생명평화운동 진영에서 대안적 사회체제적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들을 시작해야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공명'에서 이러한 논의를 계속해서 진행하고자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생명평화 작목반

"울림이 있는 사회화"
23일, 생명평화 '공명' 발기인 모임 열렸다




9월 23일(화) 저녁 6시에 "생명평화운동의 사회화"를 모색하는 <생명평화 '공명'> 발기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날 행사는 발기인과 '공명'에 관심있는 분들(그외 아직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분들까지)이 20여명 정도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 한살림(장충동) 교육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발기인 모임은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생명평화 '공명'>의 예능처장을 자처하시는 이진천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단한 몸풀기로 김민기의 '천릿길'처럼 모든 분들이 잘 아시는 노래를 불렀을 뿐만 아니라 직접 작곡해오신 '공명'의 주제가 <울어, 울려>를 함께 배워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울어, 울려>는 아직 후렴구밖에 완성되지 않았지만 진천님의 제안처럼 '귀뚜라미'와 함께 이어 부르니 맞춤옷처럼 잘 어울리는 곡이었습니다. 나중에 '공명' 발족식에는 주제가 전체를 완성해오신다고 하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참석하시는 분들이 서로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보통 아무런 형식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자기 소개와는 달리, 마지막에 "나를 생명평화로 이끌어가는 근원이자 언제나 새 힘을 주는 샘은 (     )입니다"라는 문구를 공통으로 넣어서 소개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밥, 술, 아내, 남편, 친구, 나 자신과 같은 것들을 많이 이야기해주셨고 낮술과 같은 재미있고 색다른 답변도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나서 1부에서는 "생명평화운동의 사회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간단한 대화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처음에 주요섭님이 <생명평화 '공명'>이 지금까지 어떻게 준비되어 왔는지 경과보고를 해주셨고 그뒤로 많은 분들의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몇몇 분들의 말씀을 옮겨보면 김용우님은 "생명평화운동이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에 대한 생명평화의 대안은 무엇인가? 일상의 삶에서 생명평화로 접근하는 프로세스와 구체적인 제안들을 제시하는 것이 생명평화의 사회화인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유정길님은 "생명평화운동의 사회화라는 것은 아직 스스로가 생명평화운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운동에게 도장을 찍어주고 스스로를 인지시켜주는 것,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생명평화운동 단체들이 자꾸 부딪치게 하여 서로 이해를 높이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이것이 공명이 해야할 일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현미님은 "생명평화운동이 항상 무겁고 짐이 많은 것 같은 무게감이 있는데 신명나는 일들,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사회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셨고, 정규호님은 "지금 오체투지가 진행 중인데 안타깝게도 사회적인 울림이 없는 것 같다. 사회화라고 한다면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하는 각성일텐데 이러한 것들을 풀어내야 할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외에도 여러 분들이 깊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많은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잠깐의 휴식 이후 2부에서는 발기인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규약안은 정식으로 발족하기 전에는 문서로 형식화하지 않고, 의사결정은 의견 수렴을 통한 공감과 동의를 원칙으로 하되 원할한 사업을 위해 실무중심의 운영진(작목반)을 구성하여 활동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사업계획안을 검토하고, 예산안과 관련해서 우선 운영진인 작목반을 구성하고, 작목반에서 창립일정과 자산조성계획 등의 장기적인 재정운영계획안을 추후 빠른 시간 이내에 발의하여 발기인 전체의 동의를 구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김정지현님, 이근행님, 이규원님, 이진천님, 정규호님, 주요섭님을 공식적으로 작목반원으로 선출하고 발기인 회의를 마쳤습니다.

전체 발기인 모임은 거의 2시간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되었지만 내내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뒷풀이도 매우 밤늦게까지 진행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참석하신 분들께, 그리고 참석하지 못하셨더라고 마음으로 '공명'을 지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발기인모임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다음의 "발기인모임 결과보고"를 참고해주세요.
 
                                                                                                    정리: 이규원(키리냐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키리냐가


초록의 도전, 여전히 길에 있다
초록정치연대의 역사를 마감하며

정화(전 초록정치연대 활동가)

"주객관적 한계 넘어 새 길 모색"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지식인, 생활인들이 중심이 돼 ‘아토피 정치’, ‘생활정치’ ‘풀뿌리정치’ 등을 내세우며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초록정치연대의 역사가 마감을 했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초록정치연대는 지난 7월 12일 총회에서 주객관적 여건의 어려움과 창당실패에서 쌓인 피로감, 상처로 조직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는 계속해서 초록당 창당을 모색할 ‘초록당사람들’이 제안되었다. 현재 가칭 초록당사람들(준)은 앞으로 어떻게 그간의 한계를 극복하여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밑그림을 그릴 지를 고민하고 있다.

초록의 지역정당 창당론

초록정치연대의 역사는 2002년 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민사회단체 출신의 지방의원 배출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정치를 녹색정치로 삼고, 가칭 ‘녹색정치네트워크’ 결성을 목표로 ‘녹색정치준비모임’이 만들어졌다.

특히 초록정치연대의 ‘히트’로 회자돼 온 ‘순번제 운영위원제도’가 이 때 도입됐다. 이 제도는 모든 회원은 운영위원을 할 의무와 권리가 있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제비뽑기를 통해 돌아가면서 운영위원이 되는 제도이다. 녹색가치로써 대안정치를 표방했다면, 관료제와 위계제를 극복한 평회원 중심의 대안적 조직운영원리를 실현하고자 애썼던 셈이다.

초록정치연대는 8개의 지향가치를 ‘생명, 평화, 풀뿌리, 지구, 나눔, 미래, 성평등, 다양성’로 정리하고, 회원중심의 발랄한 활동을 자원삼아, 가치와 정책, 활동, 조직원리에서 모두 참된 대안을 구현하는 초록정당을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의지로 힘차게 출발했다.

그 로드맵으로, 2006년 지방선거 참여를 통해 초록정치를 실현할 지역적 토대를 마련하여 철저히 풀뿌리원칙으로 창당하겠다는 포부를 제시했다.

이른바 ‘지역정당 창당론’ 구상은 2005년부터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서울에서부터 지방정책의 대안을 만들어 변화를 끌어내면서, 서울지역당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지역정당들 간의 연대로 창당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 녹색교통, 도시연대, 문화연대 등을 비롯한 10개의 단체로 구성된 ‘서울시민연대’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그해 하반기에는 이듬해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록정치연대의 정치세력화 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이 진행된다. 이로써 ‘서울지역 풀뿌리초록정당’ 만들기를 의욕적으로 시작했으나, 기대했던 당원수를 못 채우고 중단됐다.

곧이어 2006년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다양한 풀뿌리, 초록후보들이 모두 참여하는 네트워크 형태를 통해 선거에 임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창당하자는 구상으로 전국 각지에서 총 21명의 후보를 출마시킨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약칭 풀초넷)을 결성한다. 하지만 정당공천제라는 제도적 장벽과 한나라당의 광풍을 못 이겨내고 단 2명(과천시, 춘천시)의 당선자를 제외하곤 전원이 고배를 마셨다. 이로써 더 이상 창당논의를 지속시키지 못했다.

이처럼, ‘지역정당 창당전략’이 좌절되면서, 초록정치연대는 중앙차원에서 ‘메시지’를 발신하는 방식으로, 2008년 총선에 참여하여 제도정당으로 존립하자는 새로운 창당제안서를 창당특별위원회로부터 건네받음으로써 새 국면을 맞이한다.

그 계획은 ‘초록정당을만드는사람들’에 의해 추진되었고, 2007년 5월 31일 시민사회단체에게 초록당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했다. 그들은 창당제안서를 가지고 시민사회단체와 지방회원들을 전국각지로 밤낮으로 만나 수차례의 대화와 토론을 이어나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감하나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시민사회운동으로부터 초록당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을 받아냈고, 동의 절차를 밟았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가 창당의 초기주체가 되기에는 어렵다는 인식에 이르렀고, 스스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다음 순서를 이어가야만 했다.

2007년 10월 20일에 서울 향린교회에서 100여명의 초록당 창당씨앗(발기인)들이 모여 ‘초록당창당준비위원회’ 발족식을 연다. 아울러 신선함과 가벼움이란 양극단의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초록당 대통령후보 선출대회’도 함께 열린다. 이 대선캠페인에서는 한국의 개발성장 기조에 반기를 들고 생명평화가치를 드러내는 상징후보들(도롱뇽, 동물, 밥, 자전거, 어린이, 건강환 뫔)을 통해 초록당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했다.

“수명 다한 틀은 해산”

지방선거부터 누적된 내부동력의 소진과 대선시기와 창당이 겹친 시기적 한계 등으로 창당은 성공하지 못한다. 2008년 총회에서 결론적으로 ‘조기창당론’이 무리였다는 총평을 내렸다.

이와 함께 대선 이후 나타난 ‘진보진영의 재구성’ 과정에 적극 대응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초록당창준위를 해소하고 초록정치연대의 새 진로 모색을 위해 총선이후 독자창당, 연대창당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사회당, 진보신당 등과 가능성을 타진하자는 것으로 논의의 가닥이 잡혀졌다.

사회당과 연대창당 모색은 ‘초록정치공동위원회’라는 연대기구를 통해 창당 가능성을 탐색했다. 진보신당과는 진보신당이 창당되는 과정에서 논의주체로의 참여를 허용하였다. 초록과 진보가 함께 하는 정당을 바라는 회원들이 집담회를 열고 진보신당 참여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켜 보려했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거칠게 말해서) 초록당이 독립당으로 존재하는 게 적절하다는 게 간접적으로 드러난 중론이었던 것이다.

결국 초록정치연대는 ‘수명이 다한 틀’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부에서 창당을 계속 이어가자는 그룹들이 현재 가칭 ‘초록당사람들’(준)모임으로 길 찾기를 모색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사방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이 시절에도 한줄기 빛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아무쪼록 머지않아 주변에 희망의 길을 안내하길 바란다.

*이글은 시민사회신문에 실렸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사발지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