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경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대공황의 전조로 보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이럴 때 한국이 도약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할 기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어떤 예측이 맞는지 불확실하고 매우 혼란스럽지만, 현재 기존의 체제가 뾰족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1. 글로벌 경제위기 시대에 생명평화운동의 대안모색
생명평화 '공명'에서는 이러한 글로벌 경제위기의 시대에 국가도, 시장도, 분명한 해법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民의 대안을 찾아보고자 '호혜경제 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호혜경제, 녹색경제, 사회적 경제를 이야기하는 분들은 많습니다만 '호혜경제 네트워크'는 단순히 어떤 이론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기보다는 이때까지 생명평화운동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고 운동을 해왔던 그룹들이 함께 모여 실제로 운용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지역을 중심으로 귀농은 생계형 귀농에 대비한 프로그램을, 녹색가게는 순환형 생활경제 프로그램을, 공동체형 생협은 民주도의 사회적 안전망을, 대규모생협은 사회연대기금의 출연을, 농촌의 생산자공동체는 로컬푸드를, 여기저기서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기업/일자리를 통해 각각의 실천들을 네트워크로 교직하여 작게나마 대안을 형성해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 대안경제를 위한 모임 진행경과
그리하여 지난 11월 12일에 호혜, 협동, 생명 등을 중심가치로 대안적 경제를 실천하고 모색하는 단체의 활동가들이 모여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개별 단체의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녹색사회연구소, 녹색가게, 생태유아공동체, 생협전국연합회, 귀농운동본부, 한살림(모심과살림연구소), 생명평화 공명과 같은 단체들이 참여했습니다. 첫모임에서는 공황적 경제위기에 대한 실천현장 중심의 대안 마련과 공동 대응에 공감하면서, 다양한 경제적 대안의 탐색과 실천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장을 공동으로 마련키로 했습니다.
11월 25일 두번째 모임에서는 일단 각자 활동가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 경제의 그림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1월 중에는 대안경제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한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개최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과 실천을 토대로 공황적 경제위기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대안경제를 논의하는 주체들의 외연을 좀더 확대하여 다양한 그룹들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진행해가기로 했습니다.
12월 9일 세번째 모임에서는 대안경제에 대한 토론회를 1월 말경에 있는 다보스 포럼을 염두에 두고 개최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특히 다보스 포럼이 현재 자본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라면 대안경제에 대한 토론화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대에 民에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을 그려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호혜경제네트워크는 이러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벌써 세번 정도 모임을 가졌습니다만 아직 준비과정 중의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년 1월에 개최하려고 하는 토론회와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요즘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그동안 지배적인 경제담론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신자유주의가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호혜경제, 선물경제, 녹색경제, 사회적 경제와 같은 새로운 경제담론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차이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번에는 호혜경제라는 개념을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경제라는 개념의 역사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단어 중에서 '경제'라는 말만큼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란 무엇일까요? 우선 상식적으로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경제란 돈벌이와 관련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곧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더라도 전세계적인 상황 속에서 돈의 가치가 폭락해버리면 아무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돈, 화폐라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현대 경제학에서는 경제를 어떻게 정의할까요? 이에 대한 논의는 복잡하지만 간략하게 핵심적인 개념을 두가지 꼽아보자면 현대 경제학은 경제를 '희소성' 속에서의 최대한 '효율적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원은 제한되어 있는데 비용을 소모해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경제적'라는 뜻이지요. 보통 신문에서 어떤 것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효율성'에 맡겨야 된다는 이야기를 할때도 바로 이런 경제의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호혜경제 역시 일종의 '경제'이므로 '희소성 속에서의 효율적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개념일까요? 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라는 개념 자체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 econom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 oikonomia'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원래 '오이코노미아 oikonomia'라는 단어는 현대적인 의미의 '경제'와 같이 돈벌이, 혹은 희소성 속에서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가장이 자신의 가정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 하인들을 어떻게 운용하고, 가정의 재화를 어떻게 관리하며 재산을 늘일 것인가 등등. 그러므로 ‘오이코노미아 oikonomia’의 명사형인 '오이코노모스 oikonomos'는 가정을 돌보고 관리하는 직분이나 법칙을 말하며 현대어로는 '청지기'나, '경륜', '행정', '분배'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economy'가 '경제'가 아닌 '오이코노미아', 즉 가정의 통치라는 원래의 의미에 가장 가깝게 번역된 현대의 사례로는 기독교의 분파 중 하나인 '지방교회'의 지도자, 위트니스 리의 저서의 제목을 상기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책, 『The Economy of God』는 한국에서는 ‘하나님의 경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이코노모스'는 어떻게 현대적인 의미의 '경제'로 번역되기 시작했을까요? 우선 이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16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융성하게 된 '통치'에 관한 정치적 저작들의 논의를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군주론』은 이러한 논의에서 일종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케이벨리 이전에 군주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신과 군주와의 연속성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군주의 통치는 자연과 신의 질서를 모델로 삼고 있으며 자연과 신의 섭리와 합치하는 한 올바른 것이었습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논파했는데, 그는 군주와 공국의 관계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그 관계는 일시적으로 결합된 것일 뿐이라는 점을 입증해보였습니다(『군주론』이 하필이면 정통적자가 아닌 왕권을 이양받은 메디치가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중요해지는 것은 자연과 신의 섭리가 아닌 세속화된 세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국가'를 '통치'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이때부터 국가의 통치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국가의 통치의 모델로서 '오이코노모스'가 '가정'의 관리에서 '국가'의 관리로 범위로 확대되어 등장하게 됩니다. 국가의 통치는 바로 '정치'에 '오이코노미아'를 도입하는 것이며, 가장이 가정에서 가족과 재화를 다루는 방식이 국가가 주민 population과 재산 wealth을 통치하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이로 인해 가정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실천으로서 '정치경제학 political economy'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물질적 '부'의 문제가 국가의 통치에서 핵심적인 사안으로 중요하게 떠오르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경제'라는 개념의 유래를 길게 추적하면서 비교적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경제'라는 개념이 단순히 '희소성 속에서의 효율적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살림살이나 국가와 같은 사회적 관계의 관리와 연관되어 있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2. 역사 속 다른 경제 개념들을 찾아서
방금 살펴본 것처럼 경제가 단순한 효율성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면 호혜경제 역시 이러한 측면들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호혜경제라는 개념들을 발전시켜온 사람들의 논의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증여경제, 선물경제 - 마르셀 모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고대 원시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증여경제' 혹은 '선물경제'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제시한 사람 중의 한명입니다. 모스에 의하면 고대 원시 사회에서는 선물을 서로 주고 받는 증여제도가 발달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선물제도가 “자유롭고 공평무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제적이며 상당히 타산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선물은 받으면 기쁘지만 '되돌려주는 답례의 의무감'으로 인해 불쾌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이중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 원시사회에서는 선물교환이 호혜성의 원리에 의해 선물을 줄 의무(증여), 받을 의무(수혜), 갚을 의무(답례)의 연쇄적 관계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선물교환 제도의 특징은 첫째로는 '교환'이라는 것이 시장 없이도 특정한 규칙과 계약을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며(선물을 받고도 답례를 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둘째로는 선물의 교환이 경제적 필요에 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유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라는 점입니다. 즉, 선물 교환이라는 경제 제도는 경제성과 도덕성이 함께 작동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르셀 모스는 선물교환과 같은 경제 제도는 법적인 제도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심지어 종교적인 제도, 한마디로 총제적인 제도라고 주장합니다.
2) 호혜, 재분배, 교환 - 칼 폴라니 칼 폴라니 역시 20세기 초반의 경제학자로서 시장의 신화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론을 제시했던 학자 중 한 명입니다. 시장의 신화란 사회에서 인간 행위자 사이에 가장 근본적이고 일차적인 상호작용은 시장의 교환이며, 국가나 시민사회는 이를 보완해주는 보조장치라고 보는 관점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이러한 시장의 신화를 거부하며, 고대 사회에 대한 경제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역사적으로 경제에는 호혜(쿨라 교역), 재분배(포틀래치), 교환(시장)이라는 3가지 제도가 모두 존재해왔고 시장에서의 교환이라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 부수적인 것이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현재와 같이 경제 원리에 의해 사회 전체가 재조직된 상황을 '경제에 파묻힌 embeded 사회'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자유방임' 경제가 사실은 시장의 자율성이 아니라 '국가'의 계획과 폭력에 의해 사회 전체를 시장제도로 조직하는 과정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시장 자본주의는 아슬아슬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국가기구를 통해 사회 전체를 시장의 자기조정에 순응시키려고 하는 경향과 또 하나는 사회 조직의 핵심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자기보호 강화하는 경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3)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 - 가라타니 고진 가라타니 고진은 방금 이야기한 폴라니의 논의를 좀더 발전 시켜 자본주의가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보로메오의 매듭(세 개의 고리가 얽혀 있어서 하나를 끊으면 다 끊어지는 매듭)이라고 주장합니다. 자본이 상품교환과 화폐를 통한 교환형식이고 스테이트가 약탈-재분배라는 교환형식이며 네이션이 자본제가 파괴한 호혜적 관계에 기반한 교환형식이라고 할때 각각의 고유한 교환양식이 서로를 보완해주고 있는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이 세가지를 모두 극복하지 않고 하나만 극복하려고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를 들면 레닌주의는 강력한 스테이트로 자본주의를 타도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파시즘은 네이션으로 자본주의 극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고진은 이 삼위일체(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교환원리로 어소시에이션을 주장합니다. 그는 1990년대 말에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이라는 어소시에이션에 기반하는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합니다. 이 운동은 지역통화의 개념을 활용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소시에이션이라는 새로운 교환양식을 작동시켜보고자 합니다. 즉, NAM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본의 교환 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호혜하고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운동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가 연대하여 자본주의 밖의 생활의 지평을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고진은 이후에 <세계공화국>이라는 책에서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변화시키려는 실천전략이 NAM과 같은 내부의 노력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지양하는 힘(“국가를 ‘위로부터’ 꼼짝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위로부터의 운동을 연계시키는 ‘글로벌 커뮤니티(어소시에이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모스나 폴라니나 고진이 이야기하는 (호혜)경제는 약간씩의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호혜)경제를 효율성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로서 바라본다는 점, 둘째는 역사 속에서 '시장' 혹은 시장원리가 자연발생적이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것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해왔던 양식들을 살펴볼 때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loss에 대한 공동체적 합의와 공유의 과정을 처절하게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웃으며 손짓하는 누더기 막장 자본주의에 홀려 은근슬쩍 휩쓸려 갈 것이다.
호혜(互惠 mutual benefits) 그리고 호혜경제를 잠시 생각해 본다.
예전에 클린턴이 아버지 부시를 이길 때 내걸어서 유명해진 선거구호가 생각난다. “It's the Economy, Stupid!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문제는 호혜야!
1. 호혜경제는 호혜 자체가 목적이자 의미
동어반복은 아니다. 호혜경제는 경제가 아니라 호혜가 전부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허다한 수식어가 붙는 경제의 영역(이를테면 금융경제 실물경제 등등)과 동급으로 놓이는 호혜경제라면 뭔가 이상하다. 호혜경제란 아마도 전혀 다른 패러다임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사전에서 경제란,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라고 정의된다.
이 일반적인 정의를 빌리자면, 호혜경제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호혜적으로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호혜적인 사회적 관계>라고 하면 되나?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고 뭔가 어색한 이유인 즉, 생산-분배-소비활동을 호혜적으로 풀고, 사회적 관계를 호혜적으로 맺는다는 것, 그러니까 호혜하자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의미인지가 선뜻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경제>라고 할 때, 단순히 차가운 분석의 대상으로만 삼기 때문에 굳이 그 의미를 탐구하거나 실천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호혜경제를 이야기 하는 방식은 다른 것 같다. 호혜경제의 경우, 호혜는 대상이나 수단이 아닌 목적과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2. 호혜는 신뢰
현재는 경제위기를 넘어 全자본주의적인 파탄을 코앞에 두고 있는 듯하다. 이제 와서는 너나없이 신뢰의 파국, 국가와 시장에 대한 불신을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늦었지만 반갑다. 이미 신뢰라고 부를 수 없는 모래위에 지은 집. 그것이 영광스러운 자본주의 승리와 영원한 성장 담론이었다. 다들 상식적으로는 알면서도, “정말 이게 유지되려나? 끝까지 가려나......?” 속으로만 물으면서, 너나없이 거품을 제조해왔다.
그러면 이른바 <pie 키우기>라는 현대의 신화(神話)가 이제야 완전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과연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허위인가, 생명인가?
지구멸망 이후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을 기억하시는지. 살아남은 극소수들의 폭력성과 권력재구성에 회의하고 절망하는 영화들이 참 많다. 결국 시스템(그게 경제든 지구든)은 일부 혹은 폭삭 무너질지언정, 더 큰 파이를 추구했던 내재된 자본주의적 욕망과 그것을 획득하려는 폭력은 결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통찰이지 싶다.
호혜는 신뢰 자체, 신뢰의 다른 이름인 듯하다. 경제관계에서 신뢰의 회복을 위한 방식으로 채택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목적이다. 사회적 진리의 다른 표현에 가깝다. 신뢰가 깨진 자리에, 미봉책 또는 부분적인 모델로 호혜경제가 들어서는 것이 아니다. 들어서려면 호혜가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3. 호혜(互惠)의 신뢰 작동방식은 호손(互損)이다.
사실 자본주의에 푹 젖어있는 우리들에게 경쟁력과 성장이란 단어는 얼마나 매혹적인가? 모든 육감(六感)을 자극한다. 그러면 조금 덜어내어서 경쟁력을 →호혜로, 성장을 →자립으로, 경제주체(생산-소비자)를 →공동체로 바꾸면 어떨까? 다소 무리한 연결인지는 알지만, 뭐 상당히 그럴듯하다. 더 매혹적이다.
그러나 끝까지 물음을 밀고 가서 되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결국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작은 파이를 모자란 듯 기꺼이 나누게 될 것인가?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결국 작은 시스템을 만들어서? 잘 모르겠다.
솔직하게 고백할 때인 듯하다. 호혜, mutual benefits은 또 다시 benefits의 달콤한 환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협동하면 서로 이익을 누린다는 주장은, 동전의 한 면일 뿐이다.
서로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 호손, mutual loss. (이런 표현이 있든 없든)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지 싶다. 그러니까, 호혜를 말하는 순간, 호손 도한 호혜만큼의 비중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까먹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모두가 행복하고 편안하고 이익만 누릴 수 있는 길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고등학교 상업시간에 배운 바로는, 부채(debt)도 자산(property)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느 공동체이건 loss는 궁극적으로 자산이 된다. 그걸 지혜롭게 간직하느냐, 남 탓하다 마느냐, 뭐 그런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만일, 호혜경제를 논하면서, 또 습관적으로 benefits에 대해 기대를 건다면, 그게 스스로는 힘드니까 거버넌스니 사회적기업이니 하면서 테크닉에 의존한다면, 호손의 자산화는 커녕 결국 호혜도 물 건너 갈 듯하다.
loss에 대한 공동체적 합의와 공유의 과정을 처절하게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웃으며 손짓하는 누더기 막장 자본주의에 홀려 은근슬쩍 휩쓸려 갈 것이다.
4. 호혜와 호손, 마음 덜기
예수의 비유가 하나 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을 데려오는데, 새벽에 몇 명 낮에 몇 명 오후 5시 해질 무렵에 몇 명을 데려왔다. 주인은 6시에 모두에게 똑같은 급여를 주었다. 다음은 성서 인용이다. 나름대로 유명한, 첫째와 꼴찌 비유이다.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그러자 주인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고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한 데나리온(=당시 노동자 일당)으로 정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20장)
이 비유에 비유하자면, 이 상황에서 호혜는 성취되었다. 누구나 이익을 보았다. 문제는 투덜거리는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노고에 비해서 말이다. 오후 5시에 온 사람이 사정 어려운 옆집 사람이라고 해도, 비합리적인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다. 그들의 합리성은 공동체성을 넘어서 있는 무엇이다. 5시에 온 사람들은 어떨까? 앗싸, 땡 잡았다? 성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들도 새벽부터 일 했으면, 똑같이 반응했으리라.
따라서, 호혜와 호손을 함께 성취하는 유일한 길은 아마도,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불필요한 마음을 더는 무엇일 것이다.
공동체를 벗어나면, 첫째가 꼴찌로 전락한다. 꼴찌도 첫째를 노린다. 대표적으로 자본주의가 그렇다. 개인의 주체적인 경제활동이란, 사실 따뜻한 공동체 바깥의 무한경쟁을 의미한다.
반면에 공동체 안에서는 그저 하루의 생존이 함께 해결된다. 손해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습관적으로는 명백한 개인의 손해로 보이더라도, 모두 호혜와 호손을 통해 공동체적 자산으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믿을만한 공동체 안에서만 욕심을 줄일 수 있고, 욕심을 줄여야만 공동체가 믿을만하게 유지될 수 있다. 호혜와 호손은 그 안에서 어쩌면 성취될 수도 있지 싶다.
5. 귀농과 호혜
① 착한 귀농자들이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어느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했으며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農과 땅심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문제는 그 손해를 나누어 짐으로써 미래를 지탱하려는 공동체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수완이 있는 사람은 회원제 직거래로, 지역 조건에 따라 어떤 사람은 한살림 생산자로 공동체에 기댄다. “여러분, 귀농자를 각별히 챙겨주세요”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우리 주변에는 그들보다 백배는 더 챙겨야 할 사람이 많다. 다만, 도시와 농촌의, 조직과 개인의 접점은 있지 싶다.
② 착하게 귀농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귀촌이든 뭐든 농촌으로 가서 사는 것이 道에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태생적으로 자본주의 경쟁이나 허장성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쉽게 타협하고 절망하게 되는 지점이, 농촌에서도 여전히 상존하는 성장과 경쟁이다. 대안적 삶의 방식은 여러 선택이 가능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호혜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을 얻고 싶어 하면서 주고 싶어 한다. (호혜 운운하는) 책임 있는 사람들이 그 틈새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까? 관습적인 타협의 방식 말고, 다소 로맨틱한 진정성으로 말이다. 그들이 단 몇 명이라도 말이다. 이 사람들은 보기보다 어리숙하지는 않다. 마치 예수에게 기적을 요구하던 유대사람들처럼, 그저 확신과 동력을 원하고 있다. 공동체와 신뢰를 제시할 수 있을까? 그 접점도 역시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앞선 사람들이 솔직할 수 있으면 말이다.
6. 호혜, 있기는 있을까?
호혜는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이론도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학교급식운동에 있어서 운동 이전에, 우리 마을 아이들이기에 내 쌀을 그냥 무상으로라도 먹이는 마음. 그 언저리에 있지 싶다. 그런데 그런 호혜의 마음이 우리 곁에 있기는 있나?
도덕경의 한 구절.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이것은 천지의 뿌리와도 같은 것이지만 그 이어짐이 실낱같이 가늘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듯이 존재하며, 막상 써먹으려고 하면 의외로 뜻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호혜는 있는지 없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잘 모르겠다. 그래도 유행처럼 경제 논쟁에 열 올리기보다는 차분히 호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계속 하다보면 공감이 생기고 쌓여서 길이 엿보이지 않으려나? 호혜든 호손이든, 면면약존! 다시 말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끝
지난 주말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평화활동가 대회>가 충북 괴산 이화여자대학교 고사리수련관에서 열렸습니다. 오전 9시에 광화문에 모여서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12시쯤 고사리수련관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예전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넘었다던 문경새재를 지나면서 멋들어지게 잘 익은 단풍이 펼쳐진 풍경을 산 위에서 구경하기도 했습니다(알고보니 버스 기사님이 잠깐 길을 잘못들어서 그 위까지 올라간 것이더군요. 덕분에 좋은 경치는 잘 구경했습니다만). 고사리수련관은 충주터미널에서도 대략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따로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는데 수련관 건물을 예약한 팀이 평화활동가 대회밖에 없어서 전체를 아주 여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았었지요.
"2008 평화운동의 좌절과 희망"
아무튼 다들 도착한 뒤에 짐을 풀어놓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뒤 강당에 모여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뒤에 몇명씩 모아서 팀를 짜서 본격적인 프로그램으로 들어갔습니다. 첫째날 오후 프로그램은 '평화운동의 좌절과 희망'이었는데, 재미있었던 것이 각 팀 별로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에 발표시간에는 그냥 말로만 발표해서는 안되고 꼭 '포퍼먼스'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난 번 평화활동가 대회가 대개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어서 참여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평가가 많아서 이번에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참여형'으로 바꾸게 된 것이었더랍니다. 어쨌든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나 뉴타운, 금융위기와 같은 거시적인 것들이 평화운동의 절망으로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우 개인적인 것들, 경제적인 여건의 어려움, 운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등 진솔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그뒤 대망의 퍼포먼스 발표시간. 여기에 전부 적지는 못하겠지만 정말로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발표들을 준비했더군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는 비폭력 평화물결 박성용 목사님이 무릅팍 도사로 나와서 카페의 탁자 위에 앉아 평화활동가들의 고민들을 들어주고 해법을 제시해주는 퍼포먼스였습니다. 그 중에 한분이 오시더니 '요새는 목사가 점을 본다던데 여깁니까?'라고 이야기해서 다들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다들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재미있는 퍼포먼스로 잘 표현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PEACE CONCERT - 알아서하Show
하지만 첫째날의 행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녁시간의 프로그램 제목은 <알아서하Show>였습니다. 노는 것도 일방적으로 공연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형으로 놀라는 깊은 뜻이담겨있는 제목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내년 2009년 평화운동 유행 예감 <패션쇼>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행사를 하고 남은 플랜카드들을 가지고 가능한 세련된 그리고 평화의 메세지를 담은 옷을 만들라는 주문을 받았고(이때부터 사람들이 창의력 고갈에 슬슬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다들 플랜카드들을 얼기설기 자르고 붙여서 옷을 만들어 모델에게 입혔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조는 아무리 해도 이게 옷이 잘 안나와서 처음에는 고생했습니다만 나중에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아주 놀라운 옷을(모델에게는 차마 미안한)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패션쇼 시간도 모델을이 평소에는 어디에 숨겨뒀는지 혼신의 힘과 끼를 발휘해서 매우 즐겁게 웃으면서 쇼를 감상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한홍구 선생님이 나중에 의상을 설명하러 올라오셔서 앙드레 김을 흉내내셨는데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저녁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다들 로비에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도 그때 처음 보는 친구들과 인사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12시쯤 되었는데도 아무도 안들어가시더라구요.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놀기 시작했는데 저는 피곤해서 1시쯤에는 들어가서 잤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심지어 5시까지 놀다가 들어간 분들도 계시더군요. 평화활동가 대회 첫째날은 이렇게 마쳤습니다.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
둘째날에는 오전부터 다시 워크샵이 시작되었는데 "유쾌발랄한 평화행동 발명하기(평화운동의 방법론)",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평화운동가로서의 지속가능성)", "평화운동의 경계 허물기(평화운동의 지평확대)" 세 가지 주제 중에서 한가지 주제를 선택하여 참여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평화운동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 첫번째, 세번째 주제에 참여하기는 좀 부담스러워서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에 참여했습니다(원래 이 주제가 운동가로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된 주제인데 '살아남기'라는 제목이 왠지 필사적인 느낌을 준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평화운동가로서 살아남는데 있어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아무래도 평화활동가 대회에 참여하신 분들이 20대, 30대 초반의 활동가들이 많아서 이런 문제들이 좀 더 체감적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각자 상황이 다르고 처한 어려움도 다르지만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공통적인 문제였고, 업무과다, 인력부족, 시간부족, 운동가로서 자기계발이나 능력향상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도 많이 나온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논의해야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는데 거기서 나온 몇가지 아이디어들은 활동가들끼리 공동체나 생협을 구축하자. 불필요한 업무들을 줄이자("일은 하루에 4시간이면 충분하다"), 선배 활동가와 후배 활동가의 멘토시스템 같은 걸 만들자 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들은 이런 시기들을 거쳐간 선배들이 함께 참여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긴 합니다만(처음 준비팀의 의도는 그랬다고 합니다) 서로의 고민들을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발표시간에 나머지 주제를 논의한 팀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1번 주제나 3번 주제를 논의한 팀도 모두 2번 주제를 다루는 팀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을 똑같이 이야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평화운동의 경계를 허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존의 평화운동의 방법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역시 경제적인 문제, 인력과 자원의 문제, 소통의 문제 이런 것들으로 논의가 귀결되었던 것이지요. 둘째날은 첫째날보다는 덜 빡빡하게 진행되었고 저녁에는 스윙댄스를 배우거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다들 9시 정도부터 일찍 로비에 모여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어제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과정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중간에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서 역시나 한국이 좁다는=_=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과는 연락처를 주고 받고 또 연락하기로 했는데 재미있는 일을 같이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점심에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수련원을 출발해서 마지막날 일정에는 다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6시에 일어나서 출발했는데도 서울에 도착하니 12시가 다되었더군요. 아무튼 평화활동가 대회는 여러모로 즐거웠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좋았던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가을의 시대’, 언젠가 어느 글에서 썼던 이야기인데, 한마디로 화려한 ‘성장(盛裝)의 시대’를 지나 꽃도 잎사귀도 떨구고 ‘씨알’ 오롯이 영그는 ‘열매의 시대’가 왔다는 말입니다.(나고 자라고 쇠하고 사라지는, 어김없는 생장소멸의 생명순환 과정입니다.)
경제위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경제 때문에 잠시 잊었지만, 생태위기는 정말 치명적입니다. '경제공황'은 정말 새발의 피가 될 생태재앙(환경/생물학적 재앙)으로 인한, ‘생명공황’이 정말 걱정입니다.
씨알의 시대
파국적 상황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태계와 경제체제,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의 대전환기라는 말입니다. 지금 지구문명사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후천개벽도 같은 말입니다. 우주의 가을이 왔다는 말입니다.
성장의 시대에서 내면(영성, 지성, 감성)이 단단하게 아름다워지는 씨알의 시대로. 당연히 장경제는 부적절합니다. 소비와 생산의 축소는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대신 생태계를 복원하고 강퍅해진 영혼을 되살리고, 이웃과의 관계, 즉 공동체를 부활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깊게 공부하고 아름답게 자기실현하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전환의 기획? 이게 큰 방향이겠지요. 세계관의 전환, 생활양식의 전환, 체제의 전환.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이미 세계는 대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2MB와 아이들’은 변화하는 세계를 붙잡고 싶어 하지만,그것은 거꾸로 흐르는 강물처럼 역행, 역천(逆天)입니다. 이미 흘러간 유행가가 되어버린 ‘성장의 전설’에 사로잡힌 미숙아들 같습니다.
三少三美의 생활운동과 생명평화의 정치경제학
특별히 생명운동은 아마도 이미 펼쳐왔던 세계관 및 생활양식의 전환을 전면적인 사회적인 의제로 제기하면서, 체제의 전환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의 기준으로써 ‘3S운동’(Small, Slow, Soft, +Smart?)이나 ‘三少三美운동’(적게 벌고 적게 쓰고 적게 버리는 三少. 또한 아름답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행동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三美)을 대중적으로 펼치거나,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농업적 삶, 지역적 삶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컨대 생계형 귀농이 예상되는 오늘, 단순히 일자리나 호구지책을 넘어 가을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해내야 하지 않을까요.
체제의 전환을 기획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미 이야기는 모아집니다. 녹색평론도 수유너머도 문화과학도 강수돌님이나 우석훈님도 모아집니다. 국가와 시장, 사이 혹은 너머의 시민사회, 공동체, 코뮌, 어소시에이션, 제3부문, 사회적 경제 등등. <사회/공동체=호혜>의 전망속에 <국가=재분배>를 활용하고, 투전판 같은 <시장=교환>을 투명하게 만드는 비자본주의의 길. 혹은 관계성, 다양성, 순환성, 그리고 창조성이 실현되는 생명(질서)의 길. 교환과 재분배와 호혜가 기우뚱한 균형을 이루는 平和(균형과 조화)의 길. 표현이 다르고 생각의 경로가 다르지만, 방향은 하나인 듯합니다. 생명평화의 정치경제학.
예컨대 이런 것, ‘사회적 안전망’은 국가를 통해 만들어지지만, 사실상 ‘국가적 안전망’이긴 하지만, 공동체가 붕괴된 상황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안전망은 부재합니다.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적 안전망의 구축. 이런 것이 체제 전환의 기획일 듯합니다. 이것은 사회운동이면서 동시에 지방 수준의 정치가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물론 재분배를 위해서는 중앙정치도 필요합니다. 시장도 유의해야 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출간된 어떤 책에 따르면, 북한의 극심한 식량위기를 완충시키는 것은 계획경제(배급체제)가 아니라, 지역마다 열리고 있는 (교환)시장이라고 합니다. 시장이 가장 탁월한 ‘경제적 자기조직화(자연경제)’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호혜경제네트워크와 생명민회, 그리고 ...
그렇다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역에 내려가고, 농사지을 준비를 해야 할까요? 물론 아닙니다. 궁리(窮理) 중입니다. ‘삼소삼미운동’과 ‘호혜경제네트워크’, 그리고 ‘생명민회’를 열쇠말로.
"고삐풀린 시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 필요" 22일, "글로벌 금융위기와 생명평화운동" 강연회 열렸다
10월 22일(수) 저녁 7시 장충동 한살림 5층 교육장에서 모심과 살림 연구소와 생명평화 '공명'(준)의 공동주최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생명평화운동"이라는 주제로 김영호 학장(유한대, 전 산업자원부 장관) 초청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강연회는 요즘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생명평화운동이 이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김영호 학장은 거시적으로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시대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첫번째로는 미국의 기축통화 시대에서 포스트-달러 시대로의 전환, 둘째로는 미국지배, 백인지배 시대의 종언과 비서양권의 대두, 셋째로는 인간 중심에서 탈인간 중심의, 생명 전체의 르네상스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진보진영에서 자주 논의하는 것처럼 이제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는 정말로 종말을 고한 것인가에 대해 김 학장은 미시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국제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단독투자은행은 사라지는 없이 아니라 기존의 상업은행으로 합병되고 있고, 지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파생 금융상품을 없애자고는 하지 않고, 그에 대한 투명한 감시시스템을 만들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현실의 움직임은 단순히 신자유주의가 몰락으로 간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김 학장은 신자유주의를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분리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합니다. 즉, "시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가 사라진 고삐풀린 자본주의가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지금 상황은 거시적으로는 시장을 통제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것이 분위기지만 미시적인 흐름은 더욱 복잡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세계 시민사회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를테면 세계의 시민들이 은행과 같은 거대한 기관을 신뢰하여 금융상품들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금융기관만 지원하지 거기에서 손해를 본 시민들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 학장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세계의 시민사회가 이에 대해 고발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즉, 시장에 대해 민주주의의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김 학장은 생명평화운동과 관련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운동을 위축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교토 의정서 체제와 같이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문제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관심이 멀어지면서 거의 정지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파괴는 조금만 더 진행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온다고 이야기합니다. 김 학장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명평화운동은 생물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전체 강연은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질의 응답 시간에는 많은 분들이 열심히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몇 가지 질문만 정리해보자면 민주주의와 시장주의의 조화라는 것에 대해 좀더 설명해달라는 질문에는 민주주의의 통제가 심하면 자본의 해외도피 현상이 일어나고 통제가 없으면 시장의 횡포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적절한 조화, 중용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해주셨고, 대안경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다는 질문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소비,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책임 자본주의'의 구성을 대안으로 제시하시면서 물론 이것이 주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답변해주셨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난뒤에는 이 모임을 기점으로 생명평화운동 진영에서 대안적 사회체제적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들을 시작해야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공명'에서 이러한 논의를 계속해서 진행하고자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왠지 생각에 잠겨보지도 않은 채 덜컥 이런 곳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 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투였다. 듣는 사람에 따라, 또 새겨듣기에 따라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서러움이 복받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런 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감정에 사로잡혔 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서럽지 않고, 대신
외로웠다.
--- 박민규,「갑을고시원 체류기」(『카스테라』, 문학동네, 2005)
1.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고시원에서 몇 개월 살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아니면 자기 몸하나 누일 곳 없는 지방에서 올라온 취업준비생이나 시급으로 살아 가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절박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저 일과 논문을 병행하기 위해 시간을 좀 절약해보려고 집을 놔두고 직장 근처 고시원에 방을 잡 았을 뿐이었다. 1평 남짓한 작은 방은 침대 하나와 그 옆에 작은 책상과 의자를 놓 으면 손님 한명조차 들어올 수 없는 숨막히는 곳이었다. 밤에는 노트북으로 논문을 두드리고 아침에 다시 눈을 뜰때마다 어서 이곳에서 나가야 할텐데라는 생각만 되 풀이했다.
한 후배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공부를 위해서 잠시 집 놔두고 들어온 인간들이랑 정말 갈 데가 없어 이곳으로 들어온 인간의 차이가 뭔지 알아요? 잠깐 들어온 이들은 절대 이불을 빨지 않아요. 왜? 잠깐 덮고 지내다가 그냥 버리고 가 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계속 살아야 이에게 그 이불은 영원히 내 이불인거죠. 그 래서 자꾸 자꾸 빨아요." 그랬다. 그곳에 있는 동안 단 한번도 이불을 빤 적이 없었 다. 나는 그저 잠시 스쳐가는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몇일 전에 고시원에서 일어난 참사 뉴스를 들었을 때도 아무런 위로를 표할 길이 없었다. 그들 앞에서 고시원에 3개월 살았던 일들 잠시 추억한다는 것은 사치, 아니면 모욕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2. 한번은 친구의 고시원을 잡아주기 위해 안산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예 전에 집을 잡던 경험들을 상기하여 엄청난 발품을 팔아야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후 보지를 샅샅이 물색해서 몇군데 부동산의 목록들을 정리해서 내려갔다. 그러나 처 음 들어간 부동산에서 나는 내가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 근처로 마치 격자무늬처럼 세워져있는 고시원들은 각각 번호가 매겨져 있었고 모든 부동산 들이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있어서 몇가지 조건만 입력하면 바로바로 방이 나왔 던 것이었다. 욕실은? 창문은? 옵션들은? 그리고 우리는 차를 타고다니며 그집들을 구경했다.
"요즘 부동산이 데이터베이스가 너무 잘되어 있네요." "아, 네. 여기는 그래서 여러군데 다닐 필요가 전혀 없어요. 필요한 조건만 이야기해주시면 바로 매물을 찾을 수 있어요." "매물이 자주 나오나 보네요?" "사람들이 계속 방을 옮기니까요.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원에서 몇달 살다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으로 옮기고 그런 식으로 계속 옮기는거죠." "이런 고시원 주인들은 보통 어떤 사람들이에요?" "음.. 주로 사모님들이 많더라구요. 교수들도 있고. 생각해보면 이런 건물 하나 세워서 빽빽하게 방만들어 넣고 관리인 한명 사서 두면 서울에서야 가끔 와보면 되고 한달에 300-400은 꼬박꼬박 들어오니까요. 학생도 나중에 돈 벌려면 이런 임대사업 해봐요."
그때 몇군데 집을 구경하러 돌아다니면서 그 동산업자는 쉴새없이 그 동네에서 파노라마처럼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결국 친구의 마음에 드는 월 30짜리 집을 하나 찾았고 그 친구는 반년 후에 그 동네를 떠났다.
3. 몇 년 뒤에 한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축하모임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처음 보는 신부를 소개받은 뒤 예쁘게 인쇄된 청첩장을 건네받았다. 우리는 축의금 대신에 친구에게 뭘 해줄까 고민하 다가 돈을 모아 친구 집에 냉장고를 한대 들여주기로 했다. 대기업에 다니던 한 친구는 직원가로 사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다며 자기가 주문을 넣기로 했다. 그렇 게 한껏 부풀어 오른 분위기 속에서 한 친구가 스스로 총무의 역할을 떠맡기로 결정하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안건이 끝났다.
그 뒤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직장 인들 사이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는 주식얘기, 재테크 얘기들이 오가면서 어떤 친 구한테서 부동산 임대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제법 짭짤하다는 그 친구의 얘 기에 다른 친구들은 솔깃해했고 법원경매로 나오는 부동산 매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한 선배가 자기 집을 5층 원룸으로 재건축해서 올린 뒤에 부자가 되었다 던지, 구청에서 임대 사업 관련으로 무료교육을 시행하고 있다던지, 건국대에 생 긴 부동산학과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보들이 줄줄 쏟아져나왔다. 결론은 역시 한국 에서 돈을 벌려면 '부동산!'이었던 것이다. 나는 별 말 없이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 다가 집으로 돌아와 친구의 냉장고 비용을 총무 통장으로 보냈다.
4. 몇 일 전에 고시원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언론에서는 재빠르게도 고시원이 소방 안전의 사각지대라며 호들갑을 떨어대고, 고시원과 같은 21세기형 쪽방에 수많은 청춘들의 꿈이 저당잡혀 있다고 한탄하며 20대들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 사들을 내보내고, 이제 지겹지도 않은지 범인이 어릴 때부터 핍박을 받아서 반사회 적 인성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이코드라마를 반복해서 써대고 있었다. 나는 그 많은 기사들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김수영은 혁명이 안되자 방만 바꾸고는 실망의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그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알았다고 하지만 그 고시원에서 죽어갔던 그녀들에 게는 그 가벼움은 역사가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사람들이 살아왔 고 살아가는, 역사를 공유하는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런 특징이 없 는 빈터인 '공간',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 아무런 불편없이 사람들을 대체 가능한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시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오직 그 고시원을 '벗어나기' 위해 그곳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또는 추위에는 떨고 여름에는 푹 푹 찌는 옥탑방에서 창문이 있는 방으로, 화장실이 있는 방으로, 창문을 열 수 있는 방으로 옮겨갈 뿐이다. 언젠가는 그 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젠가는 그 방을 다시 아련히 추억하기 위해서.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라는 연민에 가득찬, 그러나 모욕적인, 때로는 외로운 질문들을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1. 지난 10월 15일부터 '화쟁'에서는 '생명평화운동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생명평화운동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기 위해 이전의 생명평화운동의 역사를 한번 정리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며 또 유익할 것 같다는 점에 많은 분들이 동의를 표하셨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귀농, 생협, 불교, 기독교 등의 분야별로 생명평화운동의 역사를 정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이번 화쟁 모임에는 김정지현, 오은영, 이규원, 이진천, 이근행, 주요섭, 정규호님이 참석하셨고, 모심과 살림 연구소의 윤형근님을 강사로 초빙하여 유영모, 함석헌 선생부터 <녹색평론>에 이르기까지 생명평화운동의 전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윤형근님께서 생명평화운동의 역사를 워낙 간명하게 잘 설명해주셔서 아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강연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글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강연의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2008/10/14 - [공부방/자료스크랩] - 한국적 환경/생태담론으로서 생명사상의 흐름
3. 그래서 이번 화쟁 모임에 대한 리포트는 강연 내용을 전부 정리하기보다는 제 개인적인 느낌들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저로써는 생명평화운동의 역사를 이렇게 정리된 내용으로 배우는 기회가 처음이라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물론 다른 분들도 이런 내용들을 부분적으로 정리하는 기회는 있었지만 이렇게 한번에 정리해보는 기회는 처음이라고 말씀하기는 하셨습니다). 윤형근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을 생명평화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좀 다르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는 유영모, 함석헌 선생과 같은 분들은 토착화 신학이라는 맥락에서 처음으로 접했었고, 윤노빈 선생은 월북한 철학자라는 분단상황의 상징으로, 프란츠 파농은 탈식민주의의 선구자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어떤 면에서는 생명운동의 단초들을 제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제 기존의 이해를 바꾸게 하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4. 윤형근님의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도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생명운동은 당파적인 운동이다'라는, 즉 생명운동이 항상 시대불변적으로 정당한 운동이 아니라 특정한 맥락과 배경 속에서 나타난 운동이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생명운동에 대한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생명운동은 '생명의 가치'라는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어떤 속성을 자신의 주장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왔었습니다. 물론 보편적인 가치들은 존재합니다. 생명 뿐만 아니라 자유, 평등, 해방과 같은 가치들 역시 보편적인 가치들이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가치들이 운동의 차원에서 혹은 담론의 층위에서 제기될 때에는 분명히 어떤 맥락과 배경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그러한 가치들을 통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는 시한이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5. '개성'이라는 가치를 예로 들어봅시다. 지난 70-80년대 한국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을 시행해왔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로 상징되는, 그러한 교육이 학생들의 '개성'을 죽이고 획일화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좀더 학생들의 개성을 살려낼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담론들이 융성하기 시작했지요. 물론 이는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개성들을 꽃피울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교육운동이 지난 10여년간 이루어낸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처럼 '개성'이라는 가치가 어떤 의미에서는 보편적인 가치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적인 맥락에서는 비판으로서 분명한 시한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6. 현재 2008년도라는 시기에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에 대해 한번 생각해봅시다. 요즘 학생들이 '개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개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래야 하는 '윤리'에 오히려 가깝습니다. 기업들은 더이상 근면하고 성실한 인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끼가 넘치는' '튀는' 인재들을 원합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이제 공부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잘 놀 줄도 알아야하고, 남들과는 다른 무엇을 갖추어야만 하며 심지어 초등학생 때부터 '창의력' 학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한국에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획일화의 폭력들은, 개성을 죽이는 구습들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여전히 두발, 교복, 일제고사와 같은 문제들이 항존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7.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성'이 여전히 보편적 가치로서 문제제기를 무조건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냐고 평가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개성'이라는 언어를 이미 자본주의가 탈취해서 자신들을 것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현재 '개성'을 가장 강조하고 찬미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블루오션' '혁신' '창조성'과 같은 단어들이 가장 남발되는 것은 오히려 CEO들의 책이 아닐까요? 우리가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과 같은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회사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가 자유분방한 복장에 마치 실험실처럼 꾸며놓은 개성 넘치는 사무실이라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요? 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전히 아무런 맥락 없이 '개성'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것("우리 아이들이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주어야지요!")은, 그러한 '개성'을 또다른 자본 창출의 원천으로 만들어버린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8.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사실 제대로 본론은 아직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말이지요. 저는 앞서 설명드린 이러한 이야기를 '생명'이라는 가치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생명'이라는 가치를 우리가 언제나 되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편안하고도 변치 않는, 항상 우리에게 비판과 대안의 원천이 되는 그러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생명'이라는 가치가 갖고 있는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화'되는 맥락 속에서 운동이나 담론으로서 나타날 때는 분명히 그 가치가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의 시효가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윤형근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운동의 '당파성'을 이러한 의미로 이해했고 그점에서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다 못한 남은 이야기는 다음 번에 생명평화운동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또 한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다른 수사를 발견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어제 오늘 다소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연일 경제기사의 타이틀은 ‘패닉’, ‘패닉’이란 말뿐이었습니다. 돈이 되는 곳이면 지옥에라도 달려갔던 ‘투기자본’(Investment Bank)과 그의 프렌드(정부)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몰락, 금융자본주의의 붕괴, 자본의 세계화의 후과 등을 거론하나 필자는 사실 경제를 잘 모릅니다. 다만 최근의 공포와 불신의 연쇄폭발은 세상의 이치로 보아 필연적이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선 주식이든 펀드든 선물이든 파생상품이든, 이것은 돈 놓고 돈 먹는 투전판이나 화투의 끗발을 겨루는 ‘섰다판’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화 ‘타짜’가 가르쳐준 것처럼 도박판에서는 ‘아무도 믿을 놈이 없다’는 것을 몰랐단 말입니까? 이런 의미에서 크레딧(credit), 즉 신용(信用)이란 탐욕과 불신의 ‘현상유지(status qua)’일 뿐, 월스트리트와 금융시장에 믿음과 신뢰는 애당초 없었다는 것입니다. 신용위기는 시한폭탄이었다는 말입니다. 시장지상주의는 오히려 이를 부추겨 뇌관역할을 했고요.
어렸을 적 화물기차에서의 화투판이 떠오릅니다. 어쩌다 타게 된 완행열차의 화물칸. 논두렁 건달들 몇이 모여 사과궤짝 위에 판을 만들어 화투를 칩니다. 지폐와 고성이 오가며 판이 무르익을 즈음 갑자기 열차 안이 컴컴해졌습니다. 터널을 지나게 된 것입니다. 객차가 아닌 화물차에는 조명등이 없었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이내 난리가 났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내 돈 내 돈” 하며 ‘패닉’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다시 열차 안이 밝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상황종료, 회복불능, 화투장과 동전과 지폐가 어지럽게 널려있습니다. 상대를 탓하며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가 더욱 근본적입니다. 돈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저토록 무섭게 비대해질 수 있을까요? 돈은 이자를 먹고 자랍니다. 어떤 돈은 많은 이자를 먹어 더욱 빨리 자라고 어떤 돈은 조금 늦게 자라기도 합니다. 욕심을 내다 꺼꾸러지는 돈도 자주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은 예외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에는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본주의 즉 ‘무한성장경제’입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쇠하고 사라지는, 돈에도 생장소멸(生長消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모든 생명은 시간과 함께 늙어갑니다. 물건들도 낡아갑니다. 그런데 돈은 낡지도 늙지도 않습니다. 가만히 은행금고에 누워있어도 계속 부풀어 오릅니다. 그렇다면 진짜로 풍선처럼 터지는 것은 필연적인 운명이 아닐까요?
20세기 초반 유럽의 실비오 게젤이라는 사람이 창안했다는 ‘노화하는 돈(Aging Money)’이 생각납니다. 돈에도 생장소멸이 있답니다. 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가상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게젤이 ‘자유화폐’라고 이름 붙인 그 돈에는 마이너스 이자가 붙습니다. 안 쓰고 가지고 있으면 새 물건이 낡듯이 가치가 조금씩 줄어듭니다. 그러니 얼른 소통을 시켜야합니다. 때문에 순환율이 높아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자연 사이에 더 많은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순환성, 관계성의 경제학. 바로 생명과정의 본성입니다.
1930년대 세계 경제공황 시절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자유화폐’의 개념을 빌린 다양한 지역통화들이 경제시스템 붕괴의 실질적인 대안으로 실험되었고 실질적인 효과가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화폐시스템을 독점하려는 중앙정부에 의해 모두 저지되었지만.
달러경제의 붕괴, 혹은 글로벌 경제공황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이즈음, ‘무한성장 경제학’의 신화에서 벗어나 ‘돈과 경제의 생장소멸’을 알아차리는 것, 이것이 ‘삶/생명 경제학’의 소박한 시작이 아닐까요?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공황적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오늘,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백기범 선생님. 지난 초봄에 뵈었는데 어느 날 부고가 날라왔다. 그리고 몇몇 선배 후배와 빈소를 찾았다. 올 여름일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7월 7일에 돌아가셨다.
백기범 선생님. 70년대 조선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현대건설에서 호구를 했고 문화일보 창간 후 편집국장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이후 잠시 시민의신문의 주필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말지를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병중에도 뵐 때마다 정말로 대단한 ‘포스’를 느끼게 해주셨다. 초록정치연대 사무실에 모셨을 때도, 일산에 찾아가 뵈었을 때도 선생님의 열정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사이버 초록나라’ 사이트를 당장 구축하자셨고, 강원도 백두대간에 몸과 마음을 닦는 ‘하늘 길’을 열자고도 하셨다. 또한 ‘영성정치’를 강조하면서 근대정치의 유물인 정당정치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초록당’도 마찬가지.
요즈음 특별히 백기범 선생님이 생각나는 것은 마치 예언처럼 달러경제의 붕괴를 단언했기 때문이다. ‘생산과잉-유통과잉-소비과잉-환경파괴-자원고갈’ 이라는 악순환 고리, 하루 1조 달러의 세계적인 허순환(虛循環) 구조 등등. ‘허순환’이란, 물론 재화의 생산이나 무역 같은 실물경제와는 관계가 없는 숫자상의 돈놀이라는 것. 요컨대 ‘적의 부재’와 ‘과잉’으로 공황은필연이라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모여들고는 있지만 정작 비는 내리지 않는 것처럼, 국경이라는 틀이 없어져서 과잉이 세계를 덮는 공황으로 폭발할 집중력을 아직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노름판에서 한 사람이 판돈을 다 따면 판이 계속될 수 없는 것과 이치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공황과 환경대재항은 문명사적인 맥락에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의 계기가 된다고 본다. 세계화도 마찬가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구조적인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가들 나름의 대응으로 이루어졌지만, 결과적으로 일찍이 떼이야르 샤르뎅이 말한 ‘인간의 세계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또한 환경재앙도 전쟁을 대신한 인류의 적(敵), 곧 해결과제가 되었지만, 이는 증오 대신 사랑으로만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문명의 전환은 이미 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선생님의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혹 살아계셨다면 어떤 작금의 사태를 보고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선생님의 통찰력과 혜안이 아쉽다.
“생명이란 우주의 자기조직화이며 따라서 나는 내가 아니라 우주의 발현”이라고 깨닫고 믿고 계셨으니 아마도 이 시간에도 은은하게 우주를 활보하고 계실 것이다.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선생님의 생각을 정리한 ‘사이버코리아닷컴’이라는 팜플렛을 공부방에 올린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