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왠지 생각에 잠겨보지도 않은 채 덜컥 이런 곳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
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투였다. 듣는 사람에 따라, 또 새겨듣기에 따라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서러움이 복받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런
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감정에 사로잡혔
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서럽지 않고, 대신
외로웠다.
--- 박민규,「갑을고시원 체류기」(『카스테라』, 문학동네, 2005)
1.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고시원에서 몇 개월 살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아니면 자기 몸하나 누일 곳 없는 지방에서 올라온 취업준비생이나 시급으로 살아
가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절박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저 일과 논문을
병행하기 위해 시간을 좀 절약해보려고 집을 놔두고 직장 근처 고시원에 방을 잡
았을 뿐이었다. 1평 남짓한 작은 방은 침대 하나와 그 옆에 작은 책상과 의자를 놓
으면 손님 한명조차 들어올 수 없는 숨막히는 곳이었다. 밤에는 노트북으로 논문을
두드리고 아침에 다시 눈을 뜰때마다 어서 이곳에서 나가야 할텐데라는 생각만 되
풀이했다.
한 후배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공부를 위해서 잠시 집 놔두고 들어온
인간들이랑 정말 갈 데가 없어 이곳으로 들어온 인간의 차이가 뭔지 알아요? 잠깐
들어온 이들은 절대 이불을 빨지 않아요. 왜? 잠깐 덮고 지내다가 그냥 버리고 가
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계속 살아야 이에게 그 이불은 영원히 내 이불인거죠. 그
래서 자꾸 자꾸 빨아요." 그랬다. 그곳에 있는 동안 단 한번도 이불을 빤 적이 없었
다. 나는 그저 잠시 스쳐가는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몇일 전에 고시원에서 일어난
참사 뉴스를 들었을 때도 아무런 위로를 표할 길이 없었다. 그들 앞에서 고시원에
3개월 살았던 일들 잠시 추억한다는 것은 사치, 아니면 모욕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2. 한번은 친구의 고시원을 잡아주기 위해 안산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예
전에 집을 잡던 경험들을 상기하여 엄청난 발품을 팔아야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후
보지를 샅샅이 물색해서 몇군데 부동산의 목록들을 정리해서 내려갔다. 그러나 처
음 들어간 부동산에서 나는 내가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 근처로
마치 격자무늬처럼 세워져있는 고시원들은 각각 번호가 매겨져 있었고 모든 부동산
들이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있어서 몇가지 조건만 입력하면 바로바로 방이 나왔
던 것이었다. 욕실은? 창문은? 옵션들은? 그리고 우리는 차를 타고다니며 그집들을
구경했다.
"요즘 부동산이 데이터베이스가 너무 잘되어 있네요."
"아, 네. 여기는 그래서 여러군데 다닐 필요가 전혀 없어요.
필요한 조건만 이야기해주시면 바로 매물을 찾을 수 있어요."
"매물이 자주 나오나 보네요?"
"사람들이 계속 방을 옮기니까요.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원에서 몇달 살다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으로 옮기고 그런 식으로 계속 옮기는거죠."
"이런 고시원 주인들은 보통 어떤 사람들이에요?"
"음.. 주로 사모님들이 많더라구요. 교수들도 있고. 생각해보면 이런 건물 하나
세워서 빽빽하게 방만들어 넣고 관리인 한명 사서 두면 서울에서야 가끔 와보면
되고 한달에 300-400은 꼬박꼬박 들어오니까요. 학생도 나중에 돈 벌려면 이런
임대사업 해봐요."
그때 몇군데 집을 구경하러 돌아다니면서 그 동산업자는 쉴새없이 그 동네에서
파노라마처럼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결국 친구의 마음에
드는 월 30짜리 집을 하나 찾았고 그 친구는 반년 후에 그 동네를 떠났다.
3. 몇 년 뒤에 한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축하모임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처음 보는 신부를 소개받은 뒤 예쁘게
인쇄된 청첩장을 건네받았다. 우리는 축의금 대신에 친구에게 뭘 해줄까 고민하
다가 돈을 모아 친구 집에 냉장고를 한대 들여주기로 했다. 대기업에 다니던 한
친구는 직원가로 사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다며 자기가 주문을 넣기로 했다. 그렇
게 한껏 부풀어 오른 분위기 속에서 한 친구가 스스로 총무의 역할을 떠맡기로
결정하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안건이 끝났다.
그 뒤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직장
인들 사이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는 주식얘기, 재테크 얘기들이 오가면서 어떤 친
구한테서 부동산 임대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제법 짭짤하다는 그 친구의 얘
기에 다른 친구들은 솔깃해했고 법원경매로 나오는 부동산 매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한 선배가 자기 집을 5층 원룸으로 재건축해서 올린 뒤에 부자가 되었다
던지, 구청에서 임대 사업 관련으로 무료교육을 시행하고 있다던지, 건국대에 생
긴 부동산학과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보들이 줄줄 쏟아져나왔다. 결론은 역시 한국
에서 돈을 벌려면 '부동산!'이었던 것이다. 나는 별 말 없이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
다가 집으로 돌아와 친구의 냉장고 비용을 총무 통장으로 보냈다.
4. 몇 일 전에 고시원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언론에서는 재빠르게도 고시원이 소방
안전의 사각지대라며 호들갑을 떨어대고, 고시원과 같은 21세기형 쪽방에 수많은
청춘들의 꿈이 저당잡혀 있다고 한탄하며 20대들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
사들을 내보내고, 이제 지겹지도 않은지 범인이 어릴 때부터 핍박을 받아서 반사회
적 인성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이코드라마를 반복해서 써대고 있었다. 나는 그 많은
기사들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김수영은 혁명이 안되자 방만 바꾸고는 실망의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그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알았다고 하지만 그 고시원에서 죽어갔던 그녀들에
게는 그 가벼움은 역사가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사람들이 살아왔
고 살아가는, 역사를 공유하는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런 특징이 없
는 빈터인 '공간',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 아무런 불편없이 사람들을 대체 가능한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시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오직 그 고시원을 '벗어나기' 위해 그곳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또는 추위에는 떨고 여름에는 푹
푹 찌는 옥탑방에서 창문이 있는 방으로, 화장실이 있는 방으로, 창문을 열 수 있는
방으로 옮겨갈 뿐이다. 언젠가는 그 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젠가는 그 방을 다시
아련히 추억하기 위해서.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라는 연민에 가득찬, 그러나
모욕적인, 때로는 외로운 질문들을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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